[파워 우먼]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혜식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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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꼿꼿이 세운 자그마한 얼굴, 까만 단발머리 - .한 마리 흑조 같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혜식 (金惠植.56) 원장의 미소에선 부드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한국인 최초의 발레유학생이었던 20대 처녀에서 국립발레단장 (93~95년).이화여대 교수 (95년) 를 거쳐 명실공히 한국발레계의 여왕봉에 오른 그를 이끌어온 것은 바로 그런 외유내강의 힘이었는지 모른다.

"국내발레계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지 벌써 6년째에요. 그동안 이뤄온 안정된 자리들도 버려야했고, 또 남편 (金柱益 미국캘리포니아주립대 식품공학과교수) 과는 '방학부부' 가 될 수 밖에 없었죠. "

이화여대 졸업 후 66년 영국의 로열발레스쿨로 향했던 金씨가 30년간 수성해온 국립발레단장 임성남씨의 후임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 93년. 그동안 그는 스위스의 취리히발레단.캐나다 르그랑발레단의 수석무용수를 거쳐 72년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와 프레스노시립발레단의 객원무용수 겸 안무가로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해왔다.

귀국 후에도 체코국립프라하발레단 종신예술자문위원은 물론, 지난 6월엔 '발레 올림픽' 이라 불리는 미국국제발레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을 맡자마자 그가 한 일은 단원들의 부업활동을 금지시킨 것. "나라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도 충분하다" 며 밤낮없는 연습으로 몰아쳤다.

입단자격도 대졸에서 고졸로 낮추고 발레단 산하에 학원형식의 어린이문화학교도 세웠다.

스펙터클발레 '해적' 을 국내 최초로 전막공연하고 '울 밑에 선 봉선화' 등 창작발레를 선보인 것은 발레단의 질적인 향상으로 그가 자랑하는 부분. 물론 반발도 있었다.

金씨의 지원으로 무용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최태지 현 국립발레단장은 "처음엔 개혁의 강도가 너무 큰 것 같아 선생님을 따르던 단원들조차 걱정했을 정도였다" 며, "하지만 '프로발레단' 을 만들어보겠다는 선생님의 구상은 옳은 것이었고, '하면 한다' 는 성격이 결국 성과를 거두었다" 고 회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힘이 돼 준 것은 남편. 金씨가 국립발레단장을 맡게 되자 6개월간 휴직하고 한국에 와 학연 등 총 인맥을 동원해 후원회를 만들어 정착을 도왔다.

96년 한국종합예술학교 무용원 초대원장으로 취임한 金씨에게 현재 최대 관심사는 무용원의 발전. 한국발레리나들도 체격.기량면에서 국제적 수준이어서 곧 국제적 스타들을 배출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글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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