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주당은 노총만 바라봤고, 한나라는 민주당만 탓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비정규직법 유예 반대한 민주당의 속내는

“시행 시기 유예를 전제로 한 논의에는 원칙적으로 응하지 않겠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일주일 전(25일) “미디어법과는 분리 대응하겠다”며 협상의 의지를 보이던 모습은 사라졌다. ‘협상 단절’ 선언으로 읽히는 이 원내대표의 발언은 전날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벌어진 한나라당 조원진 간사의 단독 상정 해프닝을 “폭거”라고 비판한 데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강경으로 돌아선 게 이 때문만은 아니다.

입장 변화엔 ‘5인 연석회의’에 참여했던 한국노총·민주노총이 지난달 29일 “시행시기 유예 반대”를 주장하며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게 계기가 됐다. 그러자 민주당은 양 노총과 입을 맞췄다.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선택이었다. 민주당이 “현행법 시행”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고용총량 유지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실직하는 사례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취업해) 고용 총량은 변함이 없다”(홍영표 의원 등)는 주장은 “회전문 고용으로 총 고용은 유지된다”(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는 노동계의 입장과 같다. 이 주장으로 민주당은 평소 사용자 측에 가깝던 한나라당으로부터 “참 잔인한 정당”(안상수 원내대표)이란 말까지 듣게 됐다.

민주당의 선택엔 “노동계와 관계를 개선할 기회”(당 대표실 관계자)란 인식이 깔려 있다. 민주노총은 2006년 비정규직법 제정 당시에도 격렬하게 반발하는 등 옛 열린우리당과도 편치 못한 사이였다. 한국노총 역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선택해 민주당과 노동계를 잇는 끈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지난해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해야 한다”는 발언 이후 민주당은 양 노총에 러브콜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반기업적이라는 이미지가 커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지금은 ‘반MB 전선’의 확대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미디어법 방어 전략의 연장선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5인 연석회의와 분리 대응 원칙은 미디어법 직권상정의 명분을 줄여보자는 포석”이라며 “여당의 단독 상정 해프닝까지 벌어진 마당에 우리가 비정규직법에서 저자세를 취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비정규직법 유예 주장한 한나라의 셈법은

비정규직 법안 논쟁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시선이 해고 위기에 놓인 비정규직을 향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노동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든 직장을 쫓겨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란이 일어나는데도 민주당은 태평성대처럼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 강성노조의 눈치를 보는 사이 정작 피해를 보는 건 힘없는 비정규직 근로자”(안상수 원내대표), “어떻게든지 살려는 힘없는 서민들의 밥줄을 끊는 일을 해서 되겠느냐”(박순자 최고위원)는 지적도 나왔다.

여권의 이런 접근엔 몇 가지 함의가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더욱 짙어진 ‘민주당=서민 정당’이란 인식을 깰 기회라고 보고 있다. 또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민주노총 입장을 대변해 왔다는 점을 감안, ‘민주당=귀족노조 옹호’란 이미지를 부각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조윤선 대변인은 “센 조직력으로 큰 목소리를 내는 민노총엔 약하고, 조직 하나 없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하찮게 보는 민주당은 그야말로 냉정하기 짝이 없다”며 “매월 3만, 4만 명밖에 해고되지 않는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안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민주노총 여의도 지부란 얘기냐”고 쏘아붙였다. 이번 해고대란을 ‘추미애 실업’으로 명명, 민주당 책임론도 부각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진정 서민을 위한 정당은 한나라당’이란 이미지를 부각하려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서민행복 한나라 추진본부’를 만들고 이날 정병국 의원을 본부장에 임명했다. 정 본부장은 “서민과 시선을 마주함으로써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겠다”며 “245개 지구당에 최소 20명 이상의 추진요원을 두고 연말까지 6개월간 100만 명에게 실질적으로 접근해 서민 정책을 점검하고 확인,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 강조 모드는 여권 전체의 기류다. 여권 관계자들은 “서민층의 민심 이탈이 심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여의도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서민·중산층을 대변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25%대에 그쳤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