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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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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또 하나의 역사가 저무는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던 망치는 냉전 시대의 막을 내렸다. 최근 이란에서 벌어진 시위는 급진 이슬람 세력의 종말을 알리는 망치 소리일 수 있다. 이란 정부가 폭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한다 해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은 이미 합법성을 잃었다. 과거 이란 국민은 아야톨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아마디네자드의 승리를 인정하자 수십만 명의 이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란 정권의 불명예스러운 몰락은 이슬람 세계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79년 이란 혁명을 통해 이슬람 세력이 처음으로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란의 이번 선거 결과는 지난 2년간 이슬람권에서 치러진 여러 선거에서 급진 이슬람 세력이 퇴조한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역풍은 2007년 모로코에서 시작됐다. 5년 전 큰 승리를 거뒀던 이슬람계 정당이 그해 총선에선 왕실의 지지를 받는 보수 정당에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같은 해 요르단에서 실시된 총선에서도 이슬람계 정당은 사상 최악의 패배를 맛보았다. 지난 4월 총선을 치른 인도네시아에서는 4년 전 39%의 표를 획득했던 이슬람 정당의 득표율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경제 악화, 실업, 범죄를 해결하는 데 이슬람교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유권자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쿠웨이트에선 5월 총선 때 이슬람계 정당이 여성 후보들에 대한 투표를 금지하는 파트와(종교적 유권해석)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의원 4명이 당선됐다. 게다가 이슬람계 정당의 의석수는 21석에서 11석으로 줄었다. 그리고 지난달 초 친서방 정당 연합이 헤즈볼라에 압승을 거둔 레바논 총선으로 이러한 흐름은 정점에 달했다.

일련의 선거에서 나타난 급진 이슬람주의의 퇴조 양상은 지난해 퓨(Pew)센터의 여론조사 결과에도 드러난다. 자살폭탄 테러가 정당하다는 응답을 한 레바논인은 2002년 74%에서 2008년에는 32%로 급감했다. 같은 응답을 한 파키스탄인은 33%에서 5%로 줄었다. 이라크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미군 점령에 저항해 왔던 이라크의 수니파 세력이 최근엔 알카에다 쪽으로 총구를 돌리고 있다. 파키스탄의 온건 정부도 올 들어 탈레반에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주춤하고 있는 것은 파키스탄과 이라크 주민들이 과격 테러에 질려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요르단·이집트·인도네시아에서 그랬듯 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가자지구 등에서도 이슬람 세력은 더 이상 추앙받지 못한다. 젊은 이슬람 세대가 인터넷과 다른 통신기술을 이용하면서 이전 세대에 비해 서방과 더욱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급진주의 세력의 쇠퇴가 반드시 이슬람권의 신정 체제 붕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집트의 석학인 사드 에딘 이브라힘은 “이슬람계 정당들이 유럽의 기민당처럼 이슬람 민주주의 정당으로 진화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이슬람과 서방 세계가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일 것이다.

조슈아 뮤라칙 미국 존스홉킨스대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
정리=김민상 기자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