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 암세포, 방사선 폭탄으로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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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런 암까지 잡는 ‘방사선 폭탄’을 만드는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의 건설 붐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뜨겁다. 기존 X선이나 양성자 빔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치료 효과가 일본과 독일에서 속속 입증된 데 고무된 것이다. 이 치료를 받은 암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44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따라 한때 최첨단 암 치료용 가속기로 군림해 온 양성자 가속기가 중입자 가속기에 왕좌를 내줄 날이 머지않았다.

암 치료용으로 가동 중인 중입자 가속기는 일본에 두 기, 독일에 한 기다. 일본이 1994년 세계 최초로 가동에 들어갔다. 근래 이 두 나라의 고무적인 임상 결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각국에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은 올해 한 기를 추가로 완공해 세 기를 보유하게 된다. 중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는 가속기를 건설 중이다. 한국과 스웨덴은 검토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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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입자 가속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무거운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방사선 폭탄을 만든다. 이 때문에 암세포 살상 능력이 기존 X선이나 양성자 빔의 평균 3배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정상 세포는 거의 손상을 입히지 않아 치료 후 부작용도 거의 없다. 몸속 25㎝의 깊은 곳에 있는 암이라고 해도 그 암 덩어리에 도달했을 때 방사선 폭탄이 터지도록 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도 한두 주에 걸쳐 서너 번만 하면 된다. 기존 X선은 강하게 쪼여 줘도 암세포에 도달하면 그 힘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강하게 쪼여 줘야 하기 때문에 정상 세포를 손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치료에 두 달은 걸리고 치료 횟수도 30~40번에 이른다.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종양학과의 양광모 박사는 “중입자 가속기는 수술 등 기존 치료법으론 손쓸 수 없는 난치 암 환자에게 ‘꿈의 치료기’로 불릴 만하다. 5년 생존율 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방사선총합연구소(NIRS)는 방사선이나 수술, 항암제 투여 등 전통 진료법을 쓸 수 없는 비강암이나 부비동암 환자 224명에게 중입자 치료를 한 결과 5년 생존율이 43%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 흉벽을 침범해 수술할 수 없는 폐암 환자 37명을 이 방법으로 치료한 결과 5년 생존율은 38%로 나타났다. 간경화를 동반한 간암 환자 21명의 중입자 치료 후 5년 생존율은 67%였다. 이들은 대개 몸이 쇠약해 수술을 받을 수 없거나 수술하기 어려운 부위의 암 환자들. 중입자 치료기가 없었다면 희망을 갖기 힘들었던 이들이다.

수술도 못하는 목덜미 부근의 골육종 환자의 영상으로, 암의 침범으로 목뼈가 녹아 거의 없어졌다(왼쪽 사진 붉은 선 안). 중입자 치료 뒤 암은 사라지고, 뼈가 재생됐다(오른쪽 사진 화살표 흰 부분이 뼈다). [일본방사선총합연구소 제공]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물리공학연구부의 김유석 박사는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는 나라마다 갓 도입되는 단계라, 우리도 외국과 공동 연구를 서둘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많은 돈을 들여 완성품을 사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입자 가속기를 하나 만드는 데는 1억 달러(1270억원)쯤 든다. 아직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2000억원까지 들 수 있다고 한다. 암 환자의 치료비는 일본의 경우 총 3만 달러(약 3800만원) 정도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탄소 등 무거운 원소의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그 빔을 암세포에 쪼이는 장치. 양성자 가속기의 경우 다른 원소보다 비교적 가벼운 수소를 쓴다. 한국은 가속기 분야 기술은 꽤 확보했으나 탄소 빔을 환자에게 쏘는 치료 쪽 기술은 불모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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