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문인·평론가 학술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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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하늘이 하늘로 보이는 곳, 바다가 제대로 바다로 보이는 곳. 푸른 청춘의 물색깔로 영원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곳. 섬은 그렇게 떠 있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그래 정현종시인은 딱 2행으로 된 시 '섬' 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고 했다.인간이면 누구나 지닐수 있는 순수와 그리움의 푯대로 바다와 섬은 떠 있는 것이다.

그런 섬과 바다는 우리 문학작품 속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가. 제주국제협의회 (이사장 김영식) 는 '바다와 섬, 문학과 인간' 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10~11일 제주도 제주시 오리엔탈호텔에서 가졌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박철희.윤재근.이청준.문충성.강우식.현길언.김시태.오성찬.윤석산씨등 시인.소설가.평론가 20여명이 주제발표와 토론에 참가했다.

"물빛이 하도 맑고 푸르러서/두발을 가만히 담그어 봅니다/여기 와서 마라도도 그 그리움을/끝내 간직하며 가지 못하고/그만 주저앉고 말았듯이, 주저 앉아서는/이 땅의 마지막 그리워하는 외로움이 되었듯이/내 짝사랑도 발이 시리고 외로워서/이제 그만 섬이 되고 싶습니다."

제주도 남단, 그리니 국토의 끝 섬 마라도를 노래한 강우식시인의 '마라도에서' 전문이다. 강씨는 이 시를 마라도에 가보지 않고 썼다고 한다.

모슬포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거기에 가장 외로운 섬, 아니 그리움의 정체처럼 사랑하는 마음 하나 떠있을 것이라며 마라도를 그렸다 한다.

이처럼 육지의 문인들은 바다와 섬을 그리움의 실체인양 바라보며 쓰고 있다. 제주 전설의 섬 '이어도' 를 비롯해 즐겨 바다와 섬을 다루고 있는 소설가 이청준씨는 "우리 삶의 위안과 이상향을 만나려는 소망에서 섬과 바다를 그리고 있다" 고 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제주 시인 문충성씨는 '제주 바다' 한 부분에서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 고 항변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뭍에 지배당한 제주도의 아픈 역사와 힘든 삶의 현장이 들어 있다. 문씨뿐 아니라 제주도 출신들의 시.소설에는 바다와 섬이 역사와 현실의 현장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조발표를 한 소설가 현길언씨는 "제주 출신 문인들은 삶의 현장으로서 바다를 그리고 있다" 고 보았다. 그러면서 현씨는 삶의 현장으로서도 바다는 중요하지만 순수와 낭만의 관념적 실체로서 바다의 문학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관념으로서의 바다도 인간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교과서적 효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토론을 통해 바다와 섬이야말로 순수.그리움.동경등 현실을 뛰어넘는 가치로 인간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영원히 열린 교과서임을 확인 했다.

제주 =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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