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 1호 보물 (18) 화정박물관 ‘오채용봉문은개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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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중국 청, 18세기, 높이 39㎝,구경 4㎝, 밑지름 11.8㎝

새하얀 바탕 위에 힘차게 솟아오르는 봉황. 알록달록한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이 넝쿨을 이룹니다. 컬러를 자유롭게 구사한 전형적인 중국 ‘오채(五彩)’ 자기입니다. 그런데 입구가 독특합니다. 주둥이를 은으로 씌운 뒤 은으로 만든 뚜껑을 달았습니다. 이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유행한 도자기 장식법입니다. 당시 유럽은 자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비싼 값에 중국 자기를 수입했습니다. 단단하고 맑은 중국 자기는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지요. 유럽인들은 귀한 자기가 일부 파손되면 버리지 않고 이렇게 금속으로 보수해 사용했습니다. 혹은 깨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금속 장식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병의 몸통에 구멍을 뚫고 금속기로 만든 주구(注口)와 손잡이를 붙여 주자로 개조하기도 했지요. 동서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기를 생산한 우리나라는 그 흐름에서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앞선 기술로 이슬람과 유럽을 석권했고, 일본은 명·청 교체기를 틈타 자기 수출국이 되었지만 조선은 교류에서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느라 급급한 반면, 조선은 독자 노선을 걸어 오히려 훗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백자를 만들 수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경희 기자

◆화정박물관(www.hjmuseum.org)=화정 한광호 박사가 40여년간 수집한 세계 각국 미술품 1만여 점을 바탕으로 1999년 서울 평창동에 개관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티베트 탕카 컬렉션, 중국 미술 컬렉션이 대표 소장품이다. 한광호 박사 인터뷰는 5일자 중앙SUNDAY에 실린다. 02-207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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