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북적북적 ‘아버지 요리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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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북적북적 ‘아버지 요리교실’
넥타이 대신 앞치마, 아빠는 행복 요리사

“육수가 뭐예요?” “닭이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어떻게 알죠?” “뚜껑 대신 신문지로 프라이팬을 덮어도 되나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린 지난 20일 오전. ‘금남(禁男) 구역’인 양천구 여성교실이 남성 수강생들로 북적였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양천구 ‘아버지 요리교실’ 첫날.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사(최소영·호원대학교 식품외식 조리학부 겸임교수)의 설명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에어컨은 아예 꺼버렸다. 재료 씻기부터 칼질하는 방법까지, 강의 내용도 여느 요리교실보다 자세하고 꼼꼼했다. 수강생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뜨거운 수강 열기에 1시간 예정이었던 레시피 소개와 요리 시연이 1시간이나 길어졌다.
 
2007년부터 이 강좌를 맡고 있는 최소영 강사는 “첫 해만 해도 수강생 대부분이 쭈뼛거리며 어색해했는데 해가 갈수록 적극적”이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고집하는 주부들과 달리 남성 수강생들은 요리에 관한한 거의 백지 상태여서 귀를 잘 기울인다”고 귀띔했다. 강좌는 여성주간(7월 1~7일)을 맞아 가정에서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4주(매주 토요일) 과정의 강좌 수강료는 5000원(재료비 4회 4만원). 당초 올해 모집인원은 선착순 24명. 4명씩 짝을 이뤄 6조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고가 난 지 30분 만에 마감, 아쉬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결국 30명으로 늘렸다. 양천구 여성복지과 한미정 과장은 “토요일인데다 비까지 내려 참여율이 저조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결석자가 거의 없다”며 “상설반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도 있다”고 전했다.
 
수강생 연령대는 30대부터 60대까지 고르고 참여 동기도 다양하다. 송호봉(60)씨는 다음달 자신의 환갑 잔칫상을 직접 차릴 요량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동안 얻어먹기만 했으니까 이번 만큼은 아내와 아이들(1남 1녀)에게 근사한 상을 차려주겠다”는 게 송씨의 다짐이다. 손자·손녀에게도 요리를 해주는 ‘쓸모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정원순(56)씨는“남편이 해준 음식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아내를 위해 수강신청을 했다. 평생 전업주부로 지내다 2년 전 일을 시작한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다는 정씨는 “(아내가) 기대하고 있을텐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파트 현관문에 붙은 전단지를 떼어온 아들의 간청으로, 정년퇴직 후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서, 나이 들어 구박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보니 요리솜씨가 필요해 앞치마를 두르기도 했다.
 
신필석(51·자영업)씨는 아내에게 신청을 부탁한 경우다. 더 나이 들어 혼자 밥 먹게 될 때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막상 요리를 해보니 ‘해볼 만하다’는 게 신씨의 소감. “요즘엔 앞장 서 부엌에 들어간다”는 신씨는 “온 가족이 모여 요리를 하다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져 가족애가 한층 두터워지더라”고 자랑했다. 이날 메뉴는 춘천닭갈비와 골뱅이 무침. “비 오는 날 안성맞춤”이라며 반긴 수강생들은 조별로 만든 요리를 시식한 후 남은 것은 미리 챙겨온 반찬통에 나눠 담았다. 장목상(43·사업)씨는 “아들(12)이 꼭 배워오라는 요리가 있어 중도에 포기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마냥 게으름만 떨고 있었을 주말 오전에 모처럼 보람된 일을 했다”는 김정기(46·회사원)씨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장을 봐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강좌는 7월 11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메뉴는 교촌치킨·탕수육(27일), 대하매실소스·우럭 매운탕(7월 4일), 민물장어구이·메밀국수(7월 10일)다.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 최명헌기자 choi31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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