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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경기장에선 공 차면 로켓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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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성아 너도 힘드냐.”

지난 2월 12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난 뒤 허정무 감독은 숨을 헐떡이며 라커룸으로 들어온 박지성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해발 고도 1290m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박지성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지쳐 보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져 생긴 현상이다. 국토 대부분이 고원으로 이뤄진 남아공은 테헤란보다 더 힘들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목표를 달성하려면 고지 적응이 가장 중요하다.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1700m가 넘는다. 인근 개최도시 블룸폰테인·프리토리아·루스텐버그도 1200~1400m에 이른다. 10개 월드컵 경기장 중 6개가 1200m를 넘는 고지에 있다.

28일(한국시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 있는 로프터스 버스펠드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 브라질의 컨페드컵 결승전 장면. 해발 1370m 고지에 위치한 경기장이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프리토리아 AP=연합뉴스]

남아공 현지를 답사한 허정무 감독은 “시차에다 고지라는 게 겹쳐 쉬 피로를 느낀다. 잠을 자도 잘 풀리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얼마나 힘든가=1700m 고지면 평지보다 1.5배는 힘들다. 2000m가 넘는 고지대를 홈으로 하는 남미의 에콰도르가 홈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강호들에게 가끔씩 이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챔피언 브라질도 남아공과 준결승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로 간신히 이겼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이탈리아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는 “한 번 뛰고 나면 회복에 12초가 걸렸는데, 여기서는 두 배가 걸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골키퍼 부폰은 “공을 찼더니 로켓처럼 날아간다.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으면 공이 너무 멀리 날아가 실수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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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준비해야 하나=고지대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상대도 우리와 같은 조건이기에 준비를 잘하면 유럽 강호와도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송홍선 박사는 “고지대에서 90분 뛰는 것은 평지에서 130분 이상 뛰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비를 하면 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며 해발 1200m인 태백선수촌의 활용을 권했다. 그는 “대회 직전, 그리고 그 이전에 한두 번 태백에서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해 고지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중국 쿤밍도 1900m 고지대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태백에서 오히려 효과적인 훈련이 가능할 것이다. 남아공으로 떠나기 전 10~14일 정도 태백에서 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고지대에서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것이 유전적으로 잘 이뤄지지 않는 선수도 있다. 어떤 선수가 고지대 적응력이 떨어지는지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압의 산소탱크와 산소캔도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한다. 허 감독은 “ 일단 내년 1월 선수들이 직접 와서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 대회 직전 남아공 도착 시기를 최대한 일찍 잡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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