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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세 시모 81세 며느리 ‘한솥밥 6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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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섬진강 최상류에 자리 잡은 전북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앞으로는 방화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회문산 자락이 감싸고 도는 분지형 마을이다. 순창군이 동계면 구미리와 함께 ‘장수 마을’로 지정한 곳이다. 29일 찾은 마을 입구에선 87세의 이부용 할머니가 이웃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10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청춘”이라며 웃었다. 황의섭 이장은 “전체 주민 130여 명 가운데 80세 이상이 12명이나 되고, 태반이 60~70대”라며 “주변 산을 오르내리면서 논밭 경작을 하니 저절로 운동이 돼 장수한다”고 말했다.

올해 106세인 박복동 할머니(中)와 81세인 며느리 이선례씨가 29일 강인형 순창군수(左) 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순창=프리랜서 장정필]


마을회관에서 50m쯤 떨어진 집에 사는 박복동 할머니는 1903년 대한제국 시절에 태어났다. 올해 106세다. 순창군의 100세 이상 노인 9명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이 늙은 할망구 볼라꼬 여그까지 왔당가”라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10여 년 전 백내장 수술을 했을 뿐 그 흔한 틀니·보청기도 끼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가는 귀를 먹었는디”라고 하면서도 나이·건강 등 물음에 막힘 없이 대답했다. 수십 년 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얘기할 때는 해맑은 미소까지 지었다. “열여덟 살에 나보다 한 살 적은 냄편하고 결혼했제. 돌아다보면 길다란 인생이 꿈결 같구먼.”

마루 한쪽에선 81세의 며느리 이선례 할머니가 시어머니의 얘기를 함께 듣고 있었다. 박 할머니를 66년째 모시고 살고 있다. 15세에 시집 와 지금까지 시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다. 고부간으로는 국내 최장수 케이스다. 4형제 맏이였던 남편과 6년 전 사별한 뒤부터 혼자 박 할머니의 수발을 하고 있다. 마을에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는 게 가까우면서도 먼 것인데 마치 친정어머니와 딸처럼 서로를 위하면서 정겹게 산다”고 전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3대째 물려받은 집에서 살고 있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고 초가 대신 슬래브 지붕을 얹었을 뿐 방 두 칸, 마루 등 형태는 1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둘은 집 안팎 어디든 함께 다닌다. 낮에는 마을회관·모정을 가고, 새벽녘 선선할 때면 동네 입구 텃밭도 같이 나간다.

며느리는 자신이 할머니로 깍듯하게 대접받아야 할 나이지만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다. 혼자서 잔칫집에 갈 때면 음식을 받아도 손대지 않는다. 대신 집으로 가져와 시어머니가 먼저 맛을 본 뒤 자신도 수저를 든다.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소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박 할머니는 소주(2홉)를 하루 한 병씩 비울 만큼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드신다”며 “특히 청국장·된장과 배추·상추 등 채소를 늘 떨어지지 않고 밥상에 올린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의 장수 비결이라는 것이다.

25~26일 세계적 노화연구학자인 레오나드 푼(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100세 장수인들의 생활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NBC방송팀과 함께 이 마을을 방문했다. 푼 교수는 “박 할머니가 장수하는 것은 모시고 사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인 박상철(생화학) 교수는 “순창 지역의 장수인들은 부지런하며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다 자식들의 부양을 잘 받고 있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80세의 노인이 100세 노인을 챙겨 주는 모습은 우리 농촌사회가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이상이 전 주민의 20% 이상, 순창군은 27%)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징표”라고 설명했다.

순창=장대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순창군 인구=3만920명 ▶노인 (65세 이상)=8473명 ▶70~79세=4000명 ▶80~89세=1469명 ▶90~99세=160명 ▶100세 이상=9명 (2008년 12월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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