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바캉스] 4. 카이로 낭떠러지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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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카이로 시내 동부 무카탐 지역에 있는 낭떠러지 노천 카페.

카이로의 가장 높은 곳 무카탐 언덕. 해발 200여m밖에 안 되는 이 언덕에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밀려든다. 카페라고 부르기도 우스울 정도로 시설은 빈약하다. 모래가 깔린 언덕 위에 해변용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들이 길게 늘어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카이로 시민들은 오후 6시부터 이 테이블을 점령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다.

카이로 젊은이들이 이 '낭떠러지 카페'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이곳은 카이로 시내보다 기온이 2~3도 낮다. 더군다나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을 감안하면 체감온도는 10도 이상 차이난다. 40~5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지친 이집트인들이 시원한 주스와 물담배를 피우며 저녁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곳은 카이로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산이 없는 카이로 시내와 주변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저 멀리 서편의 피라미드부터 시내를 관통하는 나일강까지 "탁 트인 전경을 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한 젊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언덕은 10여년 전부터 카이로에서 가장 유명한 '아베크족의 천국'이 돼왔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시내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은밀한 데이트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젊은이들이 쌍쌍으로 앉아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인다. 주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다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은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다. 차를 낭떠러지 앞까지 대놓고 차 안에서 차와 물담배를 주문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곳 언덕에 위치한 노천 카페들의 물가는 특급호텔 수준이다. 주스 한잔에 10파운드(약 2000원). 시내 주스가게보다 20배나 비싸다. 여기에 별도의 자릿세까지 요구할 정도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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