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슨은 오키나와, 미첼은 대만과 깊은 인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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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2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 1월 취임 직후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맨 오른쪽)을 유임시켜 실용주의 노선을 각인시켰다.AP특약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전장에서 숨지거나 부상당한 장병의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보도다(타임). 매일 그 숫자를 점검한다고 한다. 국방장관으로서의 자세와 꼼꼼한 성격의 일단이 묻어난다. 그는 공군을 거쳐 중앙정보국(CIA)의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 CIA 국장을 거친 데다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냈다.

국방부 게이츠와 동북아 라인

실무에 밝을 수밖에 없는 경력이다. 여기에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유임되면서 다른 각료나 부하보다 현안을 훤히 꿰고 있다는 평이다. 그는 한국 국방장관, 일본 방위상과 수차례 만난 바 있다. 그런 만큼 동북아의 여러 현안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동북아 라인은 게이츠 장관을 정점으로 미셸 플러노이 정책차관-월리스 그레그슨 아태 차관보-데릭 미첼 아태 선임 부차관보로 이어진다. 윌리엄 린 부장관은 일선 정책 입안에 나설 것 같지 않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재정차관을 지낸 그는 관리형이다.

전임 부시 행정부의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중심이자 이라크전의 설계사였다. 미 국방부의 부장관은 직제상 합참의장과 각 군사령관도 그 밑에 두고 있다. 방산업체 레이시온사의 로비스트로 일해 인선 과정에서 잡음을 불러일으켰던 점도 린의 적극적 역할을 막는 요인으로 보인다.

플러노이 차관은 중장기 국방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굴지의 안보 전문가로 국방 전략의 외길을 걸어왔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에서 전략 담당 부차관보와 선임부차관보를 지냈고, 이후 국방대 전략연구소(INSS) 교수로 있으면서 4년 주기 국방검토보고서(QDR) 실무그룹을 이끌었다. 지난 대선에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자문역을 맡았다가 경선이 끝난 뒤 오바마 진영으로 돌아섰다. 존 화이트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전 국방부 부장관)와 함께 인수위 국방팀을 맡았다.

그는 23일 중국을 방문해 인민해방군 마샤오톈(馬曉天) 부총참모장과 회담을 가졌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미ㆍ중 간 안보관련 차관급 협의는 처음이다. 그의 군사외교 신호탄으로 보인다.

그는 대중 관계 외에 한ㆍ미, 미ㆍ일 동맹의 장기 비전에도 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ㆍ미, 미ㆍ일 동맹 재조정 작업의 큰 틀은 이미 부시 행정부 때 거의 매듭돼 많은 협의가 필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는 국방 개혁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2005년 의회 증언에서 “국방 운용은 냉전 이래 근대화되지 않았다”며 “미국은 부처 간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정책의 실무 총책은 그레그슨 차관보다. 해병대 제독 출신이다. 국무부의 커트 캠벨 차관보가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관장하는 데 비해 그는 아시아 전체와 태평양을 맡는다. 미 국방 정책의 핵심 의제인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에서의 대테러전도 챙겨야 하는 셈이다.

그는 동북아 문제에 밝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에서 캠벨 당시 아태 담당 부차관보 밑에서 과장으로 일했다. 이후 해병 3사단장 겸 주일본 해병사령관, 오키나와 소재 해병신속대응군 사령관, 태평양ㆍ중부사령부 해병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도 캠벨과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제임스 존스 안보보좌관이 해병대사령관으로 있을 때 그를 3사단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역 후에는 데니스 블레어 현 국가정보국장과 함께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의회에선 상원 군사위원회의 제임스 웹 민주당 의원이 그와 해군사관학교 동기다. 그래서 인준 청문회는 싱겁게 끝났다는 얘기다. 그의 인선에 대해선 일본과 대만이 적잖게 반기고 있다. 그는 대만 방위와 관련해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그슨 차관보 바로 아래의 데릭 미첼 아태 선임 부차관보의 역할도 주목된다. 그는 이미 클린턴 행정부 때 그레그슨과 한 팀을 이뤘다. 행정부에 들어오기 전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8년간 근무했고,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중관계, 양안 문제 등 동북아 정세 전반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대만과의 인연이 깊다. 89년 대만의 영자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대만 태생 여성과 결혼했다.

미첼은 2002년 ‘워싱턴 쿼터리’에 낸 ‘통일 한국을 향한 미국 정책 청사진’이라는 기고에서 한반도 통일이 남한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미국의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통일 후에도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되 그 활동 반경을 확대하고, 미국의 안보 공약 상징으로서 미군을 한반도에 유지하며, 핵 우산을 계속 제공한다는 것 등이 골자다. 그의 이런 주장이 향후 북한의 우발 사태에 대비한 한·미 양국 계획에 어떻게 투영될지 관심이다.

애시턴 카터 획득ㆍ기술ㆍ군수 담당 차관과 주한국 대사를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 국제안보 차관보도 직,간접적으로 동북아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카터는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대비한 미사일 방어(MD)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는 98~2000년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전 국방장관)과 더불어 ‘페리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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