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중산층]상.IMF이후 20%가 '탈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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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로 가계 부도와 실업이 급증하고 자산디플레가 심화하면서 우리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중산층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고도성장기의 주역으로 소득 1만달러시대의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중산층이 갑자가 밀어닥친 외환.금융위기의 파고에 계층 하락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말 거래업체의 부도로 운영하던 가게를 날린 金모 (43) 씨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지고 하루아침에 두 자녀를 시골로 보낸 채 20만원짜리 월세살이로 전락했다.

金씨 부부는 "설마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면서 "언제 다시 가족이 모여 살 수 있을지 막막하다" 고 하소연이다.

개인사업자의 파산보다 중산층 붕괴를 예고하는 더 큰 변수는 대량실업의 공포다. 지난 5월 벌써 1백5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수는 앞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금융권 구조조정과 퇴출기업 정리과정에서 몇만명이 더 직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안정된 직장의 대명사였던 금융기관에선 이미 1만5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직의 위험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감봉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 1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8% 줄었다.

입행 15년차인 시중은행의 중견간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여가 20% 깎였고 복리후생비 폐지를 감안하면 소득 감소폭은 30%가 넘는다" 고 말한다.

소득 감소에다 장래에 대한 불안이 겹치면서 중산층의 소비는 위축될대로 위축됐다.

외식.여가활동 등 중산층의 여유를 포기한 것은 물론이고 자녀 학원비나 의료비마저 줄이는 형편이다.

부동산값과 주가 폭락은 중산층 가정을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뜨렸다.

평생 벌어 간신히 마련한 집값이 30% 가까이 떨어졌고, 푼푼이 모아 투자한 주식은 사실상 휴지가 됐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IMF 이후 중산층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20.4%에 이른다.

통계청이 분석한 1분기 근로자 가구 소득별 분포는 이같은 계층하락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위 소득계층이 단계적으로 하위 계층으로 밀려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실직자들을 감안하면 중산층의 계층 하락폭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 박태일 (朴泰一) 연구위원은 "중산층의 몰락은 구매력 감소에 따른 내수기반 붕괴와 세수 감소라는 경제적 문제 외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축을 흔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는 사회심리적 공황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고 지적한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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