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동제약 주총 ‘표 싸움’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일동제약 이금기(76·사진) 회장은 제약업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1959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동제약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영양제 ‘아로나민’ 신화를 일궜다. 국내 10대 제약업체인 일동제약에서 84년부터 현재까지 25년간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다.

그런 그가 요즘 시름에 빠졌다. 29일 일동제약 정기 주주총회에서 개인투자자 안희태씨와 ‘표 대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11.4%의 지분을 가진 안씨 측이 4명의 이사와 감사를 선임해 달라는 안건을 상정했다. 안씨 측은 공시를 통해 “일동제약의 주가가 다른 상장 제약사에 비해 현저하게 저평가돼 있는 만큼 이사회의 투명성과 감사 기능의 독립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2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씨 측이 글랜우드투자자문이라는 회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금융시장 전문가들이라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며 “25년 전문경영인의 명예를 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최대주주 윤원영(창업주 윤용구 회장의 아들) 회장의 지분은 약 24%이지만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40% 정도다. 안씨 측도 위임장을 확보한 지분이 만만치 않아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안씨 측이 주총 표 대결을 불사하면서까지 문제 삼는 부분은 일동제약의 자회사인 일동후디스의 보유지분 변동이다. 일동제약은 96년 분유 제조업체인 남양산업을 인수하면서 지분 100%의 자회사 일동후디스를 만들었다. 안씨 측은 일동후디스의 매출과 이익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반면 일동제약의 이 회사 지분은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거듭하면서 33.3%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안씨 측은 “대신 이금기 회장과 친인척의 지분이 31%로 늘어, 우량 자회사인 일동후디스의 지분가치가 일동제약의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일동후디스 지분 감소는 외환위기 때 이 회사의 경영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라고 반박했다. 일동후디스는 인수 1년 만에 외환위기를 맞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후 감자와 함께 일동후디스의 임직원과 대리점들이 제3자 배정으로 30억원을 출자하면서 일동제약의 지분율이 48.3%까지 떨어졌다. 고사상태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털었는데 이제 와서 과거 상황을 무시한다면 결과만 염두에 둔 끼워 맞추기라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이 회장은 “이번 일이 있기 전 글랜우드투자자문 측 인사가 찾아와 프리미엄을 붙여줄 테니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동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며 “이사회의 투명성 개선은 명분에 불과하고 제약업을 모르는 사람이 일동제약을 적대적 인수합병(M&A) 시장으로 내몰아 주가 차익을 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씨 측은 “감사 2명과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해 달라는 주주제안인 만큼 총 8명의 등기이사 중 2명의 사외이사 선임은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없다”며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이사회의 결의를 견제하고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