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일축전' 이뤄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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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는 8.15를 맞아 '민족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 을 판문점 (板門店)에서 갖자는 북한측 제의를 수용해 실무접촉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북한측 제안에 대해 수정제의한다는 방침이지만 일단 정책의 대전환이란 점에서 신중한 검토와 협상이 요구되는 일이다.

종래 정부는 비슷한 성격의 북한측 제의를 통일전선 전술로 보고 국내차원의 호응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25이전부터 남북연석회의라는 이름밑에 구사돼 온 북한의 이러한 종류의 제의는 90년부터 8.15때면 '범민족 대회' 라고 바뀌어 최근까지 되풀이돼 왔다.

북한은 이 제의를 할 때마다 친북단체인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汎民聯)' '조국통일 범청년학생연합 (汎靑學聯)' 등을 앞세워 대남 선동에 나서곤 했다.

'통일을 추구하는 순수한 민족화합' 대회라며 판문점에서 정치집회를 열고 주한미군 철수,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북측은 반정부적이고 친북성향을 보이는 조직만을 받아들이고 참가의사를 표명한 다른 단체들은 '반공어용단체' '반통일단체' 라는 구실을 붙여 참가를 거부했다.

이같은 정치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북한측 제의를 외면해 왔다. 국민들은 이러한 정책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북한의 통일축전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정부방침이 정당화되려면 북한의 정책이 바뀌었다는 확신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는 북한측이 이번 제안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안기부 해체, 국가보안법폐지 등의 정치적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행사주체도 범민련 대신 '민족화해협의회' 라는 새로운 민간차원의 대남창구를 설립한 것을 변화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분단이래 북한이 구사해 온 통일전선 전술의 연장선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심화되는 대남 선동과 악의적인 비방 등은 북한의 기본정책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그마한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북한과 접촉기회를 늘리겠다는 구상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은 없도록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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