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파업은 예정된 절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타협에 의한 100원보다 투쟁으로 얻은 10원이 귀중하다."

노동계가 노동운동의 '선명성'을 강조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이번 지하철 파업을 보면 이런 투쟁 성향이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좁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해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협상에 임하는 노조의 태도도 적극 타협할 뜻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부터 파업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형식적으로 교섭에 참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 실패로 직권중재 결정을 내릴 때까지 당초 안을 고수하며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사측이 핵심 쟁점인 인력 충원에 대해 외부 용역을 맡겨 그 결과를 토대로 인원을 조정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거부했다. 노조는 조정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자는 서울지노위의 제안도 묵살했다.

노조는 직권중재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20일)에야 인력 증원 규모를 30%에서 16%로 낮추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미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은 물건너 간 뒤였다. 정부는 불법 파업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고, 민주노총도 집행부의 단식.삭발 등으로 맞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지노위 관계자는 "노조가 보다 일찍 현실적인 안을 내놓았다면 조정의 여지는 있었다"며 "그러나 '벼랑끝 전술'로 나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노조는 지난해 8월 말 주5일제 법안이 통과된 이후 인력 충원 요인이 생겼는데도 정부와 사측이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예산 확보 등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조의 주장은 일부 타당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서울지하철의 경우 지난 1월 이전 노조와 사측이 주5일제에 대비해 인력조정 방안을 공동 연구하자고 합의했으나 현 집행부는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파업 직전까지 일방적인 자기 주장만 고집했을 뿐이다. 노조는 시민들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파업에 따른 불편은 결국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노조가 답할 차례다.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