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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미가 더 좋아요” 부드러운 남자가 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남자들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남성다움' 대신 '부드러움' 을 표상으로 한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멋부리기' 는 '부드러운 남자되기'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다. 근육질을 자랑하기 보다는 고운 피부와 목걸이.귀걸이로 돋보이고 싶어한다.

대학가에서 몸에 달라붙는 쫄티바지를 입고 염색한 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남학생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나드리의 권기현 (權璣鉉) 과장은 "남자들의 스킨로션과 향수도 무스크등 강한 향에서 플루랄 향등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향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 라고 말했다.

연예인 선호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는 배용준.안재욱.송승헌, 영화배우는 한석규.김승우. 이들의 공통점은 부드러운 인상, 곱상하고 갸름한 얼굴이다.

이들은 거친 이미지의 남성미와는 거리가 멀다.

남성들의 부드러움 추구 심리 속에는 응석받이의 심리가 깔려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핵가족시대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원하지만 어머니의 사회활동으로 채워지지 못해 이를 어디선가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 이라는 설명이다.

부드러움이 지나쳐 간혹 '연약함' 을 보이는 남성들도 생겨나고 있다. 3년전 결혼한 金모 (32.여) 씨는 요즘 못질이나 형광등을 갈아끼는 일을 직접 한다.

金씨는 "평상시 자상한 남편이 전구를 교체해 달라고 하니까 전기업자를 부르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 고 말했다. 심지어 이사짐꾸리기를 겁내는 남성들도 드물지 않다.

매맞는 남편들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남성의 전화 이옥 (李玉) 소장은 "아내의 구타를 호소하는 상담전화가 꾸준히 늘어 요즘엔 한달에 20여통에 이른다" 며 "이는 지난해 보다 절반 정도 늘어난 추세" 라고 말했다.

성신여대 홍대식 (洪大植.심리학) 교수는 "최근 군대에서 기합을 줄때 사병들이 예전과 달리 눈물을 흘려 지휘관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도 남성들의 변화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한 예" 로 꼽고 "이같은 남성들의 변화는 사회가치가 씩씩하고 용기있는 것보다 공부 잘하고 사교성 있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 으로 분석했다.

남자들이 달라지면서 남녀관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남학생이 여학생의 음식.커피값등을 대신 내주는 것은 이젠 '옛날 이야기' . 연세대 윤성현 (尹星現.21.인문학부3년) 씨는 "남녀사이라 하더라도 특별히 신세를 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음식을 먹고나면 각자 내는 것이 보통" 이라면서 "남자가 여자 대신 음식값을 내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 이라고 말했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해 입사한 남여사원끼리 경칭을 생략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기로 하는 것도 요즘의 새로운 직장문화다.

지난해 12월 대기업계열사에 입사한 최지우씨 (32) 는 "남여 사이에 최고 7세까지 차이가 나지만 사회생활 초년병이란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며 이름 부르고 반말하는게 대수롭지 않다는 투. 최근 페미니스트 잡지 IF (여름호) 는 '남자를 알고싶다' 를 특집으로 엮고 '남성다움의 신화는 깨졌다' 고 선언했다.

자유기고가 홍진숙씨는 이를 통해 "더 이상 힘이나 몸을 쓸 일이 없는 현대 사회속에서 힘과 용기라는 본래적 의미의 남성다움이 해체돼 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 이라며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이후 맞벌이부부 증가 등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 빨리 진행될 것" 으로 내다봤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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