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외모가 개성 있는 캐릭터라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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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재미동포 강철(39)씨는 4년째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한인 배우다. 남들은 ‘엑스트라’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스스로 ‘연기자’라고 자부한다. 할리우드가 그의 무대기 때문이다.

강철씨가 1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파크에 있는 그릭 시어터 영화촬영장에서 엑스트라 1500여 명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 내년 4월 개봉 예정인 영화 ‘겟 힘 투 더 그릭‘의 촬영 현장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그리피스 파크에 있는 그릭 시어터 영화촬영장에서 그를 만났다. 1500명이 넘는 엑스트라들이 북적대는 그곳에서 그의 외모는 단연 돋보였다. 그는 키 약 168cm, 몸무게 82kg이다. 단신에 배까지 나왔다. 치아도 두 개나 빠지고 없다. 나이는 곧 마흔이다. 겉모습만 보면 어떻게 배우를 할까 싶다.

“저도 거울을 볼 때마다 ‘참 못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감독이 제게 용기를 줬어요. ‘주위를 둘러봐라. 당신 같은 개성 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가 할리우드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서른 일곱 때다. 어릴 적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1년 LA로 가족 이민을 온 강씨는 구두닦이부터 신문 배달, 피자 배달, 수퍼마켓 생선부 직원, 수영장 청소, 페인트, 책 세일즈맨, 택시 운전사까지 20여 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중 2006년 4월 기회가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한 퓨전 일식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단골손님이던 영화작가의 눈에 띈 것이다. 엑스트라 캐스팅 회사에 등록하라는 권유를 받자 곧바로 뛰어들었다. 1년 뒤인 2007년 3월 ‘하우스 M.D.’(국내에선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방영)라는 TV 의학 드라마로 그의 연기는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으로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그것도 열다섯 장면이나.

“그때 감격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녔어요. 배경 인물에 불과했지만 제 얼굴만 보였죠.”

얼굴이 알려지면서 1년 동안 쉴 틈 없이 바빴다. 출연작들이 그의 인기를 설명한다.

“지난 4년간 영화 15편, 드라마 40여 편, 대형 광고 여러 편을 찍었어요. 짧은 경력에 비하면 많은 편이죠.”

최근 흥행에 성공한 블록버스터 영화 ‘이글 아이’에서는 클라이맥스인 의회 장면에서 의원 중 한 명으로 나왔다.

인기 드라마 ‘CSI 마이애미’에서는 검사관으로, ‘CSI 뉴욕’에서는 죄수로 출연했다. 최대 통신사 버라이존과 코카콜라 광고에도 등장한다. 할리우드 엑스트라들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힘들죠. 하루 종일 일해도 150달러를 손에 쥘까 말까 합니다. 한 장면 찍자고 최장 18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어요. 그나마 얼굴은 나오지도 않죠.”

엑스트라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대사 한마디라도 있는 단역으로 뽑히기 위해서다.

한마디라도 대사가 있으면 화면 속에서 ‘행인 1’ ‘친구 1’ ‘빨간 티셔츠’ 등의 역할명을 얻는다. 대우도 다르다. 하루 출연에 일반 엑스트라의 4배 이상을 받는다.

“문제는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본인 하기 나름이죠.”

부침이 심한 생활이라 지난 1년간 이 생활을 접었다. 불행이 연속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할리우드 작가 파업으로 촬영이 중단되면서 일거리가 뜸해졌다. 이 때문에 1년간 방황했지만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꿈이죠. 주연 배우가 되는. 내 대사 한마디에 관객이 깔깔 웃는 코미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행인 1’ ‘빨간 티셔츠’ 같은 역할명이 아닌 나의 개인 이름인 ‘강철’로 불리고 그 이름이 엔딩 자막에 올라오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굴만 있고 이름은 없는 엑스트라지만, 그에게는 좌절도 없었다.

 미주지사(LA)=글·사진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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