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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대기자 홍종인 선생 영전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사라진 대기자 洪鍾仁 (95) 선생. 평생 공부하는 기자,끝내 현장을 지킨 영원한 기자, '홍박 (洪博)' . '홍박' 은 그의 넓은 교양을 기리는 뜻에서 언론계가 붙인 애칭이다.

'홍박' 자신도 이 애칭을 즐겨 받아들였다.

"기자들이 붙여준 박사칭호라면야 진짜지" 하고. '홍박' 은 신문에 관한 에피소드가 가장 많은 대기자이기도 했다.

74년 '동아사태' 때 홍박은 자기 이름으로 지원광고를 내서 정부를 비판했다.

'홍박' 은 다른 언론인들과는 달리 언론에 관한 문제라면 소속사에 매이지 않았다.

이처럼 홍선생은 모든 신문, 모든 기자를 아끼고 사랑했다.

70년대초 프레스카드 제도를 앞장서서 반대한 것도 대기자 '홍박' 이다.

오죽하면 명함 크기의 반대 전단 (傳單) 을 만들어 일일이 뿌렸겠는가.

그의 늘푸른 기자정신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태평로 옛 신문회관 도서실에서 있은 일. 그때 나는 언론에 관한 책을 꾸미고 있었다. 때마침 도서실에 들른 홍선생은 내게 "뭘 쓰고 있어" 하고 한마디 던지고는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옆모습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노기자로 보이기는커녕 젊은 기자들을 제칠 정도로 싱그러웠다.

'홍박' 은 조선산악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내가 가까이에서 본 선생은 '산악기상 (山岳氣象)' 의 네글자로 상징된다.

영원한 대기자는 '산악기상' 과 닮은꼴일까. 나는 어느 잡지에 선생의 인물평을 쓰면서 '교과서에 옮기고 싶은 인물' 이라고 적었다.

선생이 가신 지금 그때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제정은 84년 가을이다.

이 상이 정해지기전 회원들은 명칭을 '홍박 언론상' 으로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홍박' 은 이를 사양했다.

"나는 현역기자야. " 이 한마디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선생이 얼마나 언론을 사랑하고 기자의 긍지를 지킨 분이었나 손에 잡힌다.

사진기자 이명동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훗날 무덤 속에서 신문기자로 행세할 것을 바라고 또 주필이나 부사장이 아닌 평기자로 인정해주기를 바랄 것이 분명하다. "

'홍박' 에 대한 이런 관찰은 매우 날카롭고 깊이 있다.

한국 언론의 상징. 영원한 평기자이며 대기자인 '홍박' 은 갔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기자정신은 오래 언론계와 함께할 것이다.

선생님, 편히 쉬세요.

吳蘇白 <서울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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