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땅 십승지를 가다]13.경기도가평 설악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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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근교에도 십승지가 있다.

주말이면 사람과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청평댐에서부터 유명산 휴양림에 이르는 경기도 가평군 (加平郡) 설악면 (雪岳面) 이 그곳이다.

강원도 설악산과 같은 이름의 설악면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처음 붙였다.

본래 이곳은 고려말 미원현 (迷原縣) 으로 양평군에 속했었지만, 1942년 가평군으로 넘어왔다.

옛 미원현의 역사적 흔적은 이곳 미원초등학교 이름에 남아 있다.

'정감록' 은 설악면에서도 소설촌 (小雪村) 을 승지로 꼽는다.

양평 북쪽 40리에 있는 소설촌은 미원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으며 그곳은 '가장 깊은 심심계곡' 이라 했다.

소설촌은 설곡리 (雪谷里) 라는 행정구역 안에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다.

설악면 일대가 휴양지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설곡리는 여전히 숨은 마을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면소재지를 지나는 37번 국도를 타고 유명산쪽 (양평 방향) 으로 가다가 엄소리라는 동네를 거쳐야 한다.

엄소리는 말하자면 설곡리의 초소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다시 양의 창자와 같은 굽이굽이를 지나야 설곡리를 만나게 된다.

북으로 북한강이 가로 막고 동.서.남에는 용문산의 큰 줄기가 에워싸고 있어 이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피난처라고 할 수 있다.

황해도 신계에서 조부때 이곳으로 왔다는 김종섭 (60) 씨는 "이곳은 퇴로 (退路)가 없어 군부대가 주둔할 수 없는 곳" 이라며 "6.25때 용문산 전투가 매우 심했지만 이 마을에는 피해가 전혀 없었다" 고 덧붙였다.

설곡리는 여느 피란지와 달리 골의 폭이 매우 좁다.

또 소설이란 말이 상징하듯 겨울이면 설악산에 비견할 만큼 많은 눈이 내린다. 용문산 뒷쪽인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집단적 거주지는 결코 아니다.

고려말 보우국사가 소설암을 짓고 몸소 경작을 했듯이 그런 장소로 적합한 곳이다.

오늘날 눈으로 보면, 소설보다는 이웃 묵안리 (墨安里)가 더 승지에 가깝다. 소설가 조세희씨의 고향인 묵안리는 동리 입구에 검은 바위가 빗장을 지르듯 가로막고 있다.

바위에는 '묵암동천삼청일월 (墨巖洞天三淸日月)' 이란 글귀가 선명하다.

바로 속리산 우복동이 자랑하는 '동천' 이 바위 뒤에 숨어 있다.

나라 안에서 제일 좋다는 국수 (國水)가 또한 이곳에 있다.

묵안리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방일리 (訪逸里).가일리 (可逸里) 다.

지금은 유명산 휴양림으로 더 소문난 이곳은 이미 오래 전에 오늘의 변화를 예고해 왔다. 두 동리 모두 '크게 숨는 곳' 이란 대일 (大逸)에서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명에 숨어있는 선조들의 예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곳이 설악면이다.

가평 = 최영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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