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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국 4만896명 못다 핀 젊음 … 지금은 2300구 남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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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06면

2300명의 외국인 전사자들이 안장돼 있는 부산 유엔 기념 공원(UNMCK). 안성규 기자

‘22,21,17,19,20, 23…’

부산 유엔기념공원, 이국에 묻힌 용사들

난수표 같은 숫자들. 부산시 남구 대연 4동 유엔기념공원(UNMCK)에 안장돼 있는 외국군 묘비에 쓰인 전사자의 나이다. 공원 측에 따르면 전사자의 평균 나이는 22세. 원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을 지킨다는 대의명분 속에 산화된 젊은 그들이다.

6·25에는 16개국으로부터 175만4400명의 병력이 참전했고 4만896명이 전사했다. 전사자 가운데 1만1000명의 유해가 1951~54년 UNMCK에 안장됐다. 그 가운데 벨기에·콜롬비아·에티오피아·그리스·룩셈부르크·필리핀·태국 등 7개국이 전부 이장했다. 지금은 11개국 2300구의 유해가 있다.

안장된 유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영국이 차지한다. 885구다. 이어 터키 462구, 캐나다 378구, 호주 281구 순이다. UNMCK 박은정 홍보과장은 “각국의 장례 전통 때문에 나라마다 매장자 비율이 다르다”고 했다. 프랑스는 유가족의 의사에 따른다. 270명 사망에 44명만 남아 있다. 영연방 국가인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공화국은 ‘죽은 나라에 묻힌다’는 전통이 있다. 영국군 전사자 1177명 가운데 885명이 남아 있다. 캐나다는 516구 가운데 378구. 호주는 346구 가운데 281구, 뉴질랜드는 41구 가운데 34구가 안장돼 있다.

미국은 전사자 3만6492구 가운데 36구만 남았다. 전사자를 다 이장해 가는 전통 때문이다. 지금 남은 36구는 종전 뒤 유엔군으로 복무하다 사망한 가운데 본인이 원한 경우가 포함돼 있다.

전사자 평균 나이가 22세여서 결혼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후손도 거의 없어 추모 발걸음은 뜸한 편이다. 박 과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친구나 형제들이었는데 이제 그들도 80~90세로 많이 사망해 못 오고 조카가 오거나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신혼 초에 참전, 유복자를 남기고 전사한 경우 세월을 견딘 사랑의 결실로 부부 합장이 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호주 병사 잭 세파드의 부인 도리스 세파드도 2004년 87세로 사망한 뒤 유언에 따라 남편 묘지 곁에 합장됐다. 묘비에는 ‘사랑하는 남편 옆에 편히 쉬다’라고 돼 있다. 한국인으로는 홍옥봉과 부인 박봉금의 합장묘가 있다. 미군 소속 카튜사였던 홍옥봉 일병은 50년 9월 창영에서 전투 중 사망했는데 유엔군 참전 자격으로 안장됐다.

UNMCK는 전사자의 전사 당일 묘 옆에 국화 한 송이를 꽂고 국기를 묘 옆에 건다. 매일 8명꼴이다. 지금은 이처럼 깔끔하게 단장됐고 질서가 잡혔지만 전쟁 당시만 해도 거친 공동 묘지 냄새가 풀풀 났다. 이전엔 당곡이라 불린 이곳은 바다를 끼고 부두가 있다는 입지 조건 때문에 유엔 사령부가 묘지터로 지정했다. 사체를 옮겨가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묻고 파내는 일이 일상이 됐다.

전쟁이 끝난 뒤 임시묘지였던 이곳은 훼손이 심해져 1955년 한국 국회가 유엔에 ‘영구 유엔 묘지 설치’에 관한 건의를 했고 수용돼 그해 11월 4만5000평을 한국이 유엔에 공식 기증하는 형식으로 유엔 묘지가 조성됐다. 그래서 조용한 공원 같아 보이는 UNMCK는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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