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한국-조선-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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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양에서 한국을 '코리아' 로, 중국을 '차이나' 로, 일본을 '재팬' 으로 부르는 것은 어디서 시작된 일일까. 중국의 경우는 로마제국때 시황제 (始皇帝) 의 진 (秦) 나라가 알려져 그 이름이 중국을 가리키게 됐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16세기 남중국해 (南中國海)에 진출한 서양인들이 '고려' 와 '일본' 의 이름을 그곳 발음으로 전해듣고 그대로 적은 데서 지금의 서양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16세기에 우리나라 국호는 '조선' 이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중국인들이 '고려' 라 부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조선' 은 왕조의 이름이고, '고려인삼' 하는 식으로 지역을 가리키는 데는 편의에 따라 다른 이름을 써도 무방했던 것이다.

외국에서 자기나라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관행에 맡기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은 스스로 '도이칠란트' 라 부르지만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에서 '저머니' , '알레마뉴' 로 통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스페인 역시 '에스파냐' 라는 자기네 말 이름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불러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열강의 식민지경험을 가진 아시아 -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유럽인들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에 반감을 가지고 독립 후 고유한 이름을 정식국호로 내세울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통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크메르 (옛 캄보디아) 와 미얀마 (옛 버마)가 그런 예다.

우리나라 남북의 정권은 '한' 과 '조선' 을 각각 국호로 내세우지만 대외적 국호에는 함께 '코리아' 를 쓴다.

ROH (Republic of Han) 나 DPRC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Chosun) 같은 이름을 어느쪽에서도 내세우지 않는 것은 분단 극복의 뜻을 담은 바람직한 자세다.

통일 후 국호로 '고려' 가 유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석현 의원이 명함에 '韓國 (南朝鮮)' 이라 찍은 것은 사상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예절문제다. 지금 중국인 중에 '韓國' 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책 광고를 빙자한 변명에서 중국인을 위한 '친절' 이었다고 우기지만 설득력이 없다. 그 명함이 반란죄 증거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 축도 문제가 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고 예절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조차 없이 나서는 꼴 역시 보기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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