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취임 100일]경제성적표 일단 합격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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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4일 취임 1백일을 맞았다.

청와대는 이 기간을 '국난극복의 출발기' 로 규정했다.

국가부도 위기를 넘기고, 경제회복 기반을 마련한 시기였다는 설명이다.

金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괜찮은 경제성적표를 남겼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일 (12월18일) 당시 39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 외환보유액 (외환보유고에서 금융기관 해외점포 예치금을 뺀 금액) 은 5월말 현재 3백43억달러로 늘어났다. 환율도 그런대로 안정됐고, 금리도 많이 떨어졌다.

수출이 불안하긴 하지만 무역수지도 계속 흑자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제제도도 개방시대에 맞게 상당 수준 개혁됐다.

전면적인 인수.합병 (M&A) 이 허용됐고, 외국인의 국내토지 취득이 자유화됐다.

金대통령은 경제대책조정회의 의장을 맡아 경제를 직접 챙겨왔다.

개혁도 진두지휘했다.

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 을 국정운영의 기본철학으로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관치경제 병폐를 제거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다.

국정운영 시스템도 개선됐다.

국무회의가 최고의결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경제대책조정회의.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도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미흡하고 아쉬운 점도 많다.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인정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개혁세력과 개혁프로그램이 과연 존재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꽤 있다.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의 취약성, 두 정당의 빈약한 인재 풀 (pool) , 일부 각료의 개혁의지.자질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준비되지 못한 참모' 부분도 결국은 대통령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와 관련해 金대통령은 경제분야만큼의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대화.타협정치를 보여주지 못해 정국은 계속 불안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고 책임을 돌리지만 金대통령과 여권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측면도 부인키 어렵다.

인사도 잘됐다고만 볼 수 없다. 정권의 핵심포스트를 호남출신으로 채워 지역감정을 자극했다는 비판이 있는 게 사실이고, 보건복지부장관 경질과 청와대 일부 수석 교체 등도 인사실패의 사례로 꼽힌다.

경제부처의 정책혼선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서로 조율이 안되고 상충되는 정책들이 쏟아져 무엇이 개혁돼야 하는지,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헷갈리게 한 것은 큰 시행착오였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투자하기를 주저했다. 대외신인도에도 나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金대통령의 향후 과제는 분명하다.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개혁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은 과감히 인사조치하고, 편중된 인사는 시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불안.노동불안 상태를 민주적으로 해소하고 국론분열과 지역감정을 치유하는 리더십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金대통령이 미국방문 뒤 펼칠 '새 1백일 계획' 이 주목된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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