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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다른 죽음의 이미지…중세엔 ‘메멘토 모리’ 경구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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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가량이 사망하는 참극을 겪은 중세 말기 유럽만큼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한 시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호소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죽음의 이미지는 멸망과 덧없음이었다. 지상의 화려함이 쇠락해가는 것을 한탄하면서 세 가지 주제가 부각된다. 첫째는 ‘한때 명성을 날렸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였다. 둘째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해체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셋째는 죽음이 나이·신분을 초월해 모든 사람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14세기에는 죽음이 초래하는 육체적 파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무시무시하게 드러낸 무덤들이 등장했다. 어떤 무덤의 비석에는 “이 무덤을 구경하는 사람도 머지않아 악취 풍기는 시체로 구더기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다른 비문은 음산하게 경고한다. “지금의 당신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이고, 지금의 내 모습은 미래의 당신 모습이다.” 죽음 뒤의 육체 분해는 공포를 야기했다. 성모 마리아가 임종한 후 육체와 영혼을 수반하고 천국에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성모몽소승천(聖母蒙召昇天)’은 그녀의 육체를 썩음에서 건져냈다는 점에서 가장 소중한 은총으로 여겨졌다.

저승사자가 낫을 들고 히죽거리며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들을 데려가는 모습, 마귀가 지옥에서 고통으로 절규하는 사람들을 불로 지지는 잔혹한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성 제발두스 교회에는 1330년경 제작된 석상 ‘현세의 왕’이 있다. 웃고 있는 앞모습(사진左)은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왕이지만 등(사진右)에는 뱀과 구더기들이 기어 다닌다.

역사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아널드 토인비는 미국인들 사이에 죽음을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것’으로 여기면서 죽음의 불가피성에 직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풍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오직 인간만이 자기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런 풍조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형제자매와 사별한 경험이 있던 1세기 전만 해도 죽음은 삶에 대단히 가까운 것이었다. 얼마 전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로 ‘죽음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옹다옹하는 각박한 세태에 죽음문화의 성숙이 성찰적 삶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