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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맞은 아시아경제]'달러 빼기'경쟁 불보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남아시아는 새로운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인가.

인도.파키스탄의 핵실험 강행에 대해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이 직.간접적인 경제제재조치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아시아 전역이 긴장하고 있다.

경제력이 극히 취약한 인도.파키스탄에 대해 제재조치가 가해지면 서남아경제는 곧바로 수렁에 빠지게 된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해서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최혜국 (最惠國) 대우 취소와 함께 무상원조 (1억4천만달러) 및 미국수출입은행의 신용한도 (현재 5억7천만달러) 를 철폐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 (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ADB) 등 국제 금융기구의 지원중단을 지렛대로 쓸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IMF.세계은행.ADB의 올해 지원규모는 파키스탄의 경우 40억달러 가량이다.

인도는 세계은행에서 지금까지 4백40억달러를 빌려 썼으며 올해도 6월까지 30억달러를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일본 역시 신규차관 및 정부개발원조 (ODA) 를 취소했으며 독일.영국 등 나머지 서방선진7개국 (G7) 도 돈줄을 바싹 조일 움직임이다.

이럴 경우 서남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경제는 파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IMF의 경제분석가는 "제재가 가해지면 파키스탄정부는 외화예금 자산을 동결해 환율.수입 등을 통제하는 긴급조치를 취하겠지만 통화위기의 가능성을 피할 수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핵실험을 먼저 강행했던 인도의 통화가치는 달러당 39루피대에서 핵실험 이후 41.71루피까지 하락했고 주가도 10% 가량 곤두박질치는 등 금융위기의 초기단계에 빠져 있다.

인도.파키스탄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선진국 은행들은 부실채권이 늘어나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금 회수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태국.인도네시아.한국 등 아시아지역에 빌려준 돈이 우선적 회수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투자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동남아 및 서남아에 대한 투자.대출비중이 높은 일본 기업.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급증으로 인한 엔화 약세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파키스탄의 핵실험 소식에 뉴욕.도쿄 (東京) 등지에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엔화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아시아 각국의 외환.주식시장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해 또 한차례의 태풍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수출증가세와 경제성장률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중국이 거듭되는 외부악재들을 자체적으로 흡수하지 못해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에 나설 경우 사태는 세계경제의 공황사태로 치달을 만큼 심각해진다.

중국경제는 최근 내부적으로 산업생산 증가율이 크게 낮아지고 재고.실업이 급증하는 등 고민거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유럽 경제도 증시과열.실업 등의 고민거리를 각각 안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경제가 총체적 혼란에 빠져 수출이 격감하고 채권확보가 어려워지면 미국.유럽 기업의 실적악화와 주가폭락은 불문가지 (不問可知) 다.

갈수록 꼬이는 아시아 위기에 세계경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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