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
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 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
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
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
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
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
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
다.
- 김종해 (金鍾海.57) '바람부는 날'
오세영은 김종해의 시들을 '체험적 진실의 언어' 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시에는 삶의 살점들이 묻어나고 있다. 저 부산 자갈치시장의 신새벽에 자라난 그의 삶의 시작과 함께 시의 절절한 율동이 나온 것이다.그 이쪽에 믿음직한 시의 정장 (正裝) 이 있다. 지하철이 이렇듯이 바람부는 날의 사랑에 대한 현장일 줄이야.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