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로 시를 쓴다, 우리가 놓쳐버린 도시의 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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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명덕 작가의 ‘도시정경’ 연작 중 ‘명동’, 2007.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가장 현저한 변화를 보여준 현대미술 분야라면 단연 사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현대사진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예술과 미술시장 모두를 관통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었다. 다양성·확장성·전문성·예술성 등 다각도 채널을 통해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오늘의 한국현대사진! 한국현대사진이 보낸 지난 밀레니엄 10년의 세월을 ‘2009 오디세이’의 현장에서 짚어나가고자 한다.

이 안에서, 작가 주명덕(69)은 한국현대사진 시작의 물꼬를 튼 제1세대 작가다. 먼저, 그의 ‘한국의 가족’ 시리즈는 한국현대사진의 변화가 시작되었던 1970년대에 제작된 현대적 의미에서의 첫 기록사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사회인식을 표출하는 것은 물론, 보는 이의 감동을 끌어내는 주제작업이기도 하다. 이후, 주명덕은 작가의 삶을 근간으로 한 자의식을 사진에 개입함으로써 미술사에서 말하는 감정이입을 성공시켜나간다.

머지않아 그의 사회 인식 표현은 한국의 땅에 대한 서정적인 관심으로 이행된다. ‘잃어버린 풍경’이 이러한 관심을 형상화시켜 나간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국의 거친 산맥들이 주명덕의 뷰파인더 속에서 한 폭의 풍경화로 거듭나며 한국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각을 화면 전체로 가득 채워나간다. 태생적으로 현재를 담아낸다는 사진매체의 본질 속에서 ‘동시대적 공간’이라는 주제는 운명적일 것이다. 이 운명은 작가의 시야를 자연에서 도시라는 공간으로 붙들어 매놓는다. 바로 그 운명적인 작업이 ‘도시정경’이다. 흑백과 칼라로 제작된 이 방대한 시리즈는 도시와 공동운명체인 현대인의 삶의 토대를 담아내고 있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주명덕의 사진 속에는 도시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도시풍경들은 미술사에서의 풍경들이 주연을 위한 배경으로 채택되었던 것처럼 주로 주명덕의 인물을 위한 배경들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의 도시들은 화면을 압도하는 주연으로 등극되면서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인식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가 평생을 살아왔던 지금의 서울(도시)을 사랑하는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한 장 한 장 그의 사진을 지지대로 삼는 도시의 풍경들은 현대인이 놓치고 만 서정적인 대상이 된다. ‘도시정경’ 시리즈는 이러한 감동적인 서울 즉 도시의 모습을 구축시켜나가는 것이다. 작가 주명덕은 성실 그 자체로의 작업방식을 통해 젊은 작가도 놀랄 만한 작업량을 자랑한다. 인물과 풍경은 그의 사진 속 대표적인 주인공들이다.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이 주인공들은 사람냄새가 난다.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향내 말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일산 작업실을 온통 채워나갈 때 쯤이면 시큼한 인화액 냄새 속에서 무수한 흑백의 이미지들이 정착되어 나간다. 그 이미지들은 단 한 장도 똑 같지 않다. 어느 것은 슬프고 어느 것은 흥겹다. 작업하는 순간마다 작가의 느낌들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작가가 평생 놓지 않고 있는 아날로그의 맛이 아닐까. 이제, 주명덕의 사진들은 그의 독자적인 예술성을 구축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한국현대사진예술의 개념과 형식을 차곡차곡 재 정의해나가며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예술의 진정성을 정립해 나간 주명덕은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가운데 하나이다.

김민성(‘2009 오디세이’ 큐레이터)

◆주명덕은=1940년 황해도 장수산 자락 신원에서 태어났다. 47년 삼팔선을 넘어 서울에 정착한 뒤 서울 중고등학교 시절, 산악 사진가 김근원 선생을 만나 사진에 눈을 떴다. 61년 경희대 사학과를 수료하고 66년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을 열어 6·25가 낳은 혼혈고아들에 국내 최초로 주목했다. 이후 소외된 계층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해 사진의 사회적 기록 가능성을 열었다. 중앙일보 출판국 ‘월간중앙’에 입사해 샤머니즘과 전통 문화유산 등에 눈돌려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현재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주명덕 사진전-장미’를 7월 25일까지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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