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김지룡 지음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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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꼭꼭 질렀던 빗장을 조심스레 푼다. 그러나 불쑥 찾아온 손님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제 집인양 주인을 몰아낼 태세다.

아니면 식구들에게 나쁜 물을 들일까 걱정된다.일본문화 시장 개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저 일본의 대중문화라면 섹스와 폭력이 난무한 저질이라는 선입견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지룡 (34) 씨는 이 점이 안타깝다. 상대부터 알아야 할텐데 완전 무방비 상태다.

게이오 (慶應) 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며 지낸 6년간 김씨는 만화.애니매이션.영화 등 일본의 주류.비주류 문화를 고루 섭렵했다. 국내에서 문화경제평론가라는 타이틀로 일간지에 글도 써왔다.

이번에 낸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는 그동안 갈고 닦은 일본 대중문화에 관한 식견을 털어 놓은 책 (명진출판刊) .제목만 보면 일본 문화 찬양 같지만 내용은 그게 아니다.

지피지기 (知彼知己) 면 백전백승 (百戰百勝) 이라고 일본 대중문화의 본질을 알리고자 하는게 글 쓴 이유다. 문화를 관통하는 일본인의 심리, 일본문화의 장.단점, 세계 시장에서의 문화 마케팅 전략 등 어느 한가지 시각으로는 놓치기 쉬운 일본 대중문화의 속내를 종합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얄팍하다고 치부하기에는 한국인에게 너무도 흡인력 있는 문화적 저력을 분석해보고 일본 문화의 주체적 수용을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일본 문화의 장점은 두가지. 첫째는 여러 가치관이 공존하는 사회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문화가 다양한 갈래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온갖 쇼 프로그램을 댄스 뮤직이 장식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이 싫으면 얼마든지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엔카에서 비주얼 록까지 셀 수없이 많은 분야가 널려 있다.

김씨는 "문화개방에 있어서 우리처럼 주류 문화만 대접받고 그외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은 문제" 라며 "한번 기세가 꺾이면 외래 문화가 완전 '싹쓸이' 를 할 판" 이라고 설명한다.

둘째는 일찌감치 문화를 상품으로 보고 세운 빈틈없는 마케팅 전략. 일본 최대 장난감 메이커 반다이는 20년 이상 수많은 애니매이션을 후원해 왔다. 만화영화가 큰 이익을 남겨서가 아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초합금 로봇으로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그들이 만든 '파워 레인저' 는 유명하다.

그런데 반다이가 새로운 모델의 로봇을 내놓는 시기는 실수요자인 어린이들이 풍족한 학기초.어린이날.크리스마스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소비자를 결코 식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물건을 함께 파는 일본의 상술에 주목하자" 고 말한다.

방어적 자세만 취할게 아니라 한국보다 3배나 큰 일본 시장을 상대로 가져다 팔 것이 있다면 팔아보자는 이야기다.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무조건 한국 문화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하기에는 생경한 외래 문화의 자극이 너무나 강하다.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우리 문화상품이 속속 등장한다면 저절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 생길 것이라고. 이 책은 최신 일본 문화의 다양한 정보를 토해내며 한국 대중문화에서도 다양성만이 살 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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