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속 썩여? 바람 피워? 장모들이 먼저 “갈라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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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0대 초반의 전문직 남성 A씨는 2004년 늦장가를 들었다. 하지만 신혼 때부터 장모와 사이가 불편했다. 지방에 사는 장모는 서울에 올라와 신혼 집에 며칠씩 머물다 가곤 했다. 장모는 “왜 귀가가 늦느냐”며 A씨의 생활에 간섭했다. 부인과 장모가 자주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부인은 부인대로 “왜 우리 엄마한테 불손하게 대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딸 부부가 각방 생활에 들어가자 장모는 아예 함께 살면서 “차라리 헤어지라”는 투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현관문 자물쇠를 바꿔 사위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일도 있었다. 결국 부부는 별거에 들어갔고, 2008년 이혼법정에 서게 됐다.

A씨처럼 장모가 파경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사유와 그 과정이 제시된 판결 165건을 분석한 결과 시부모나 친정 부모가 이혼 과정에 끼어든 부부가 12쌍이었다. 이 중 장모가 개입한 사례는 5쌍에 달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등식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신세대’ 장모들은 딸의 속을 썩이는 사위의 직장에 찾아가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외도를 한 사위와 상대 여성을 불러 ‘3자 대면’을 하기도 했다. 김삼화 변호사는 “과거 친정 부모들은 ‘웬만하면 참고 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오히려 딸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권해 놀라곤 한다”며 “곱게 기른 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혼 소송을 청구한 여성 원고들을 연령대별로 보면 40대(36.2%)와 30대(29.1%)가 많은 데 반해 남성 원고의 경우 50대(36.7%)와 40대(27.8%)가 많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남녀의 인식 차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박 상담위원은 “30대와 40대 여성의 경우 과거 세대와 달리 ‘남녀가 다를 게 없다’는 평등 의식이 강한 데 반해 비슷한 연령대 남성은 아직도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이혼 청구 소송 4만2622건 가운데 65.4%인 2만7895건이 여성 배우자 쪽에서 낸 것이었다. 여성이 이혼 소송을 낸 비율은 1980년 47.8%에서 95년 53.8%로 늘어난 뒤 2000년 62.1%로 급증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권석천·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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