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MB는 한반도 ‘그랜드 비전’ 갖고 미국에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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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미국 방문길에 올라 현지시간으로 16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엄중한 시기에 열리는 정상회담인 만큼 책무가 막중하다. 유엔 안보리는 2차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전례 없이 강력한 결의(187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반발해 북한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하고, 재처리를 통해 생산한 플루토늄 전량을 무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유엔 결의에 따른 대북 봉쇄는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러시아까지 포함된 국제사회와 북한이 ‘치킨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불투명한 후계 구도로 북한 내부 정세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북한은 더욱 깊은 고립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언제 뭐가 터질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동북아를 뒤덮고 있다.

이 위기 국면에서 한·미 정상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불용의 확고한 원칙을 천명하는 동시에 한반도와 주변국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다. 양국 정상이 회담에서 채택할 ‘한·미동맹 미래비전 선언’에 ‘확장 억지력’ 개념으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하기로 한 것은 이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핵우산 문제를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주권론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

한반도 문제가 한국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이 빠진 한반도 논의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점을 확실히 하고, 혹시라도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 다음 달 미·중·일이 워싱턴에서 고위급 3각 정책대화를 갖는다는 얘기가 있어 하는 소리다. 6자회담 참가국에서 북한을 뺀 5개국이 우선 모여 북핵 문제를 논의하자는 방안도 제안해봄 직하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 미래의 ‘그랜드 비전’을 논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한반도의 비전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그리는 것이지 남이 대신 그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주변국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비핵화된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의 큰 그림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지지와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북한을 비핵화하고,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을 논의해야 한다. 무조건 몰아붙이기만 한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만큼 적당히 퇴로를 열어주면서 채찍과 당근으로 북한을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한·미 정상이 최고위급 대북특사 파견 문제를 함께 검토해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플루토늄에 우라늄까지 북한 핵 시계 두 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핵의 몸값은 올라가게 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순위에 있는 북핵 문제를 앞순위로 옮겨놓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이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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