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변함없는 중국의 ‘김정일체제 유지’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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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몇 달 동안 북한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와 같은 대단히 강력한 조치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는데 이는 평상시의 행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제 무슨 조건을 제시해도 핵무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유엔제재 1874호 결의에 대한 북한 외무성의 반박 성명에서도 그 같은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을 용인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심 정책이 지구상의 핵 감축이고, 북핵을 용인하는 경우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힘들 것이며, 동북아에서도 핵무장 도미노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과 미국 간의 입장이 그만큼 벌어져 있고 타협 여지가 대단히 좁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이 취하는 강성조치들이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권력승계와 북한체제의 안정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요인을 고려해 권력승계를 서두르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군부의 지지 확보와 체제 안전보장을 위해 핵 보유국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처럼 핵 문제가 북한의 가장 민감한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 북핵 타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 상황에서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핵 보유에 대한 가장 강한 ‘부정적 압박’과 핵 포기에 대한 가장 강한 ‘긍정적 유인’을 동시에 구사해 북한으로 하여금 긍정적 유인책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지난주에 나온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도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강한 압박장치의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이 효과를 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협력이다. 북한 무역의 3분의 2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고 남북관계 악화로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협력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원치 않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일본·한국, 심지어 대만까지 핵개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체제의 안정을 비핵화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로 설정해왔다. 그래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 경제는 일종의 빈사상태로 하루하루를 해외원조에 의지해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중국이 경제지원을 중단하면 북한의 체제 자체가 와해될 위험이 있다. 문제는 그 경우 수백만의 북한 난민이 중국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중국은 북한의 체제 불안정이 한국 주도의 통일로 연결되는 경우,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영향력이 압록강·두만강 국경지역까지 북상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우려를 한·미가 충분히 해소해줄 수 있다면 정치적 완충지대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고 중국이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군사적 완충지대는 지속시키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중 간, 한·중 간의 신뢰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이러한 합의를 이루어낼 정도로까지 깊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북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힘들고, 이를 간파하고 있는 북한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북한 관계가 악화되고 있고 중국 내에서도 북한을 동맹보다는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 정책결정자들이 북한에 대한 전략을 바꿨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처럼 북핵 문제는 북한의 체제문제요, 통일문제요, 이를 둘러싼 주변국 역학의 문제다.

이러한 복잡 미묘한 그리고 위험한 격동기일수록 국민적 통합이 중요하다. 국민적 합의에 기반해서 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공동행보를 유도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적 난국 때마다 그러했듯이 우리 정치권은 국민 통합을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상황이 예사 상황이 아닌데 말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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