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오징어 낚기를 목청 가다듬으며 설명하고 있는 변씨의 구레나룻은 어느덧 바닷물과 오징어가 쏘아올린 먹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갯일을 훌쩍 단념해버리고 뭍으로 올라와버린 뒤, 잠시 옛날의 어부로 돌아온 변씨의 얼굴은 모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뱃전 가에 자리잡은 어부들이 습관적으로 자새질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손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낚싯줄을 풀어줄 때는 별다른 근력이 들지 않았지만, 감아 올릴 때는 등골이 휘는 것 같은 고통이 뒤따랐다. 물속에 잠겨 있는 40미터에 가까운 낚싯줄을 퉁겨가며 자새질을 하려면, 상반신이 꼿꼿하게 버틸 수 있도록 온전한 힘을 실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끼와 낚싯바늘과 추, 또 낚시에 매달려 요동치며 올라오는 오징어의 무게까지 겹쳐 생선상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가 수월치 않았다.

간혹 올라오는 오징어란 놈도 사력을 다하여 물을 뿜어내기 때문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지 않으면 엉겁결에 자새질을 놓아버리기 일쑤였다. 누구를 도와주고 간섭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모두들 자새실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곁의 사람의 일에 관심을 두고 지켜볼 말미도 없었다. 오징어가 올라오든 아니든 한 번 잡은 자새질은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변씨가 말했던 것처럼 파도에 떼밀린 선체가 옆으로 설 때, 집어등의 불빛이 자신의 낚싯줄 쪽으로 정면으로 비칠 때는 자새질을 멈추고 한 개비의 담배나마 피워 물 수 있는 말미를 얻을 수 있었다. 등골이 부러지는 듯한 고된 작업이, 집어등을 켜고난 이후부터 수평선 위로 여명이 희붐하게 밝아올 무렵까지 쉴틈없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선실을 지키고 있는 선장은, 사뭇 붉밝기를 불렸다 줄였다 하면서 오징어떼가 선체에서 떠나지 않도록 유인해주었다.

작업이 종료되었을 때, 뱃전 가에 자리잡고 앉았던 어부들 모두가 먹물을 뒤집어쓰고 새까만 얼굴로 변해 있었다. 봉환이 역시 속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겉옷은 바닷물과 오징어가 풀무질로 뿜어낸 먹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룻밤을 잠 한숨 못자고 건져올린 수확들은 갑판 위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살아 있는 채로 부두까지 가져가야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어부들은 때때로 일손을 멈추고 갑판 위로 건져올린 오징어들을 먼저 물을 채워둔 이물과 고물께의 선창에 쓸어넣었고, 물까지 갈아주며 활어상태로 유지시키는 데 안간힘을 쓰기도 하였다. 청일호는 다시 주문진항을 향하여 쫓기는 듯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봉환은 비로소 자신의 손바닥에서 언제부턴가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갑을 끼고 자새질을 시작했던 기억은 생생한데, 어느새 벗겨져나가고 사뭇 맨손으로 작업을 한 탓이었다.

오직 자새질에만 정신을 쏟은 열세 시간 정도를 보낸 듯 한데, 이물간에 모여 앉아 주먹구구를 하고 있는 어부들의 표정은 밝지가 않았다. 그 날 어부들이 낚은 활오징어는 얼추 잡아서 천이백여 마리였다. 그것을 선장과 5대5 비율로 나누면, 어부들에게 분배되는 수효는 6백마리였다. 그 6백마리를 선장을 제외한 여덟 사람이 나누면, 80여마리에 불과했다. 돈으로 따져보면 6만여원에 불과한 하찮은 소득이었다. 그나마 첫 출항에 얻은 소득으로 자위하고 썰렁하게 식은 도시락을 열고 밤새 굶은 허기들을 달래고 있었다.

주문진항에서 활오징어를 건네받아 서울의 횟집까지 수송해주고 운임을 받아 연명하였던 경험이 있는 봉환도 어부들이 겪고 있는 스산하고 눈물겨운 고통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나서야 가슴이 메는 것이었다. 쓰라리다 못해 뼛속까지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손바닥을 내밀며 하소연할 엄두도 못하고 말았다.

변씨는 봉환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익히 눈치채고 있었지만, 어쩐 셈인지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부두에 내리자마자, 참았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봉환은 무심코 가게로 가던 발길을 돌려 변씨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김주영 대하소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