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한 ‘정치 파업’ … 민노총, 투쟁 동력 약화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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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3일 민주노총은 ‘6월 10일 국민촛불대행진을 기점으로 총파업 등 총궐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의 투쟁계획을 발표했다. ‘총고용 보장과 노동법 개악 반대, 반(反)이명박, 반자유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2, 3월까지만 해도 금융위기를 맞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지면서 6월께 노사 관계가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예측대로 가지 않았다. 노사관계가 여느 때보다 안정됐다. 1~5월 임금 반납·삭감을 포함해 무파업, 무교섭, 복리후생 축소 등 근로자들이 양보해 교섭이 타결된 회사는 1255곳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배 늘었다.

민주노총은 6·10 행사가 임박하자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공을 들였다. 그러나 2만2000여 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이날 서울집회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1100여 명뿐이었다.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조합원(500명)이 가장 많았다. 민주노총은 6·10 행사를 투쟁의 발화점으로 삼으려 했으나 되레 얹혀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보듯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이번에는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길거리 투쟁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6월 고비설은 설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배경에는 민주노총의 약화가 있다.

◆정치투쟁 외면=올 들어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는 12개사다. 울산 NCC·단국대·한국컨테이너 부두공단·그랜드 힐튼호텔 등이다. 특히 4월 인천지하철노조와 서울도시철도노조 같은 대형 노조가 이탈하면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이들 노조가 탈퇴한 이유는 민주노총의 강경투쟁, 정치투쟁에 대한 염증이다. 하나같이 “정치적인 문제에 조합원을 동원하고, 정치파업만 일삼는 민주노총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리위주의 노동운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4월 말 “현장(각 기업노조)이 이성적으로 변하고 있다. 6월 총파업 계획은 접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변화에 대한 전망이 조심스레 나왔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자 입장을 바꿨다. 민주노총은 9일 “7월 초 총력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6·10 집회를 ‘반이명박 범국민대회’로 규정하고, 다시 총파업의 불을 지폈다. 민주노총은 “잘못된 노동·경제정책을 바꾸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런 민주노총의 방침이 현장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 총파업을 선언한 9일 울산컨테이너 터미널노조는 노조를 해산했다. 이 노조는 지난달 민주노총 운수노조에서 총파업 지침을 내리자 총회에서 부결시키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전위부대 격인 금속노조는 6·10 부분파업을 했지만 현대차·기아차·GM대우 등 완성차 노조가 불참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노사상생포럼에서 “정당·시민사회단체가 할 일과 노동계가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민주노총의 파업은 간부들만의 파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관련 법 개정이 변수=정부는 이달 국회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을 통과시킨 뒤 7월부터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위한 노동관계법 정비에 나설 방침이다.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우리와 민주노총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은 뒤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던 한국노총이 노동법 개정에 대해서는 총력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현재 임·단협 교섭 중인 현대·기아차 노조의 움직임이다. 보건의료노조도 교섭 중이다. 이들이 파업에 들어가면 민주노총의 7월 총파업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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