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정리 위해 효율적 퇴출시스템 정비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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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실기업 정리를 제대로 하려면 '기업 퇴출시스템' 의 새 틀이 마련돼야 한다. 퇴출제도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야만 퇴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퇴출자체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차제에 '시장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 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유승민 (劉承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관련, "무엇보다 '청산이냐 유지냐' 의 경제성을 판별하는 장치가 시급하다" 고 말했다.

퇴출제도는 크게 '청산형' 과 '갱생형' 으로 나뉜다.청산과 갱생을 가르는 기준은 청산해서 남는 가치와 갱생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유리한 쪽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퇴출시장은 청산보다 법정관리.화의나 협조융자로 연명하는 등 갱생에 편향된 경향을 강하게 보여왔다. 법원에 접수된 퇴출사건 통계를 보면 도산사건이 급증한 지난해 퇴출신청 4백92건중 4백54건이 화의나 회사정리 등 갱생형 제도를 신청했다. 올 3월말까지 모두 4백7건중 3백21건이 화의와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이렇게 비교적 시간이 적게 걸리고 자본재투입효과가 큰 청산형이 외면당함으로써 효율적 퇴출을 저해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요인이 돼왔다는 지적도 있다.

정진영 (丁震榮) 변호사는 "빈약한 퇴출시장이 청산형 시스템 가동을 어렵게 한다" 고 말했다.벌처펀드나 해체전문회사 등 '하이에나 기업' 이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가치를 높인뒤 되팔아 차액을 챙기는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선진국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또 퇴출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해체전문회사를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게 하고 이에 따른 수익을 인정하는 제도적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산자산은 반드시 경매를 통해 매각하도록 돼있는 현행 파산법도 퇴출시장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박용석 (朴容錫) 변호사는 "기업을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이해당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며 "정부나 법원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시장왜곡만 가중시킨다" 고 말했다.

이밖에 남일총 (南逸聰)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화의.법정관리 등 기업 생사를 판단하는 법원의 능력을 크게 높여야 한다" 며 "전담 판사를 경제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 고 조언했다.

대우경제연구원 한상춘 (韓相春) 국제경제팀장은 "결국 원활한 퇴출제도의 운용은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상업성에 기초해 영업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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