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긴급구조 119]전화남발로 정작 위급한 곳에 못갈 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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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생활 주변에는 어이없는 부주의로 일어나기 쉬운 사고들이 많이 있다. KBS2 '긴급구조 119' (화 저녁7시25분) 는 그런 사례들이 소재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의도로 방영된다. 그러나 '긴급구조 119' 는 뜻밖의 부작용 (?) 도 갖고 있다. 국민들의 구조대 호출이 남발된다는 것이다. 구조대를 전화 한 통으로 출동시키는 요령은 '긴급구조 119' 프로가 다 가르쳐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이 잠겼는데 열어달라' 는 요청이다. 물론 이런 신고에 119구조대가 출동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대부분 긴박한 상황설명이 붙는다. "집안에 가스불을 켜 놓은 것 같다. " "아기가 홀로 갇혀 있는데 감전 등 안전사고가 우려된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긴급한 상황은 없는 게 보통" 이라는게 서울구로소방서 민원석 (38) 구조대 반장의 말이다.

민반장은 "TV를 보고 어떻게 신고하면 구조대가 출동하는지 알았다는 고백 (?) 도 들었다" 고 말한다. 심지어 요즘은 'IMF라 열쇠 수리공 부르는 값이라도 아껴보려 했다' 고 고백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

다음은 구로소방서 구조대원들이 출동했던 또다른 경우. 지난 1월 "문이 잠겼는데 안에 사람이 갇혀 있다" 는 30대 주부의 신고가 있었다. 발생장소는 구로구 고척동의 한 아파트. 문을 잘라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아파트 옥상으로부터 로프를 타고 내려가 창문으로 들어갔다.

신고대로 집안에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웬걸. "당신들 누구냐" 고 벌컥 화를 냈다. 알고보니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부인을 쫓아냈던 것. 이런 일들로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화가 날만도 하다.

그러나 '국민에 봉사하는 직업' 인 만큼 화를 참을 수 밖에 없는게 구조대원들의 입장. 그저 "우리가 출동한 사이 정말 위험에 처한 사람이 구조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별일 아닌 신고는 자제해 달라" 정도 말하는 것이 보통이란다.

이밖에 '긴급구조 119' 는 119 전화를 들끓게하는 죄 (?) 도 저질렀다.

TV를 보고 구조대원들이 마치 만능 해결사인 것처럼 인식돼 조그만 일에도 사람들이 119를 불러대는 것. 구로소방서에는 "남편과 싸웠는데 나쁜 사람이니 잡아가라. " "뱀이 나타났다. " "동네에 벌이 많은데 벌집을 찾아 없애달라. "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났다. 견인해달라" 는 정도 뿐아니라 신세를 한탄하며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까지 걸려온다.

구로소방서 민반장은 " '긴급구조 119' 가 인기 프로로 자리잡은 뒤 사소한 일로 구조대를 부르는 경우가 부쩍늘었다" 며 "그러나 구조대 출동할 때마다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이 쓰이는 만큼 사소한 출동요청은 자제해 달라" 고 당부했다.

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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