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카드대란 책임자들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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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용카드 부실 문제는 지금도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소비가 좀처럼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신용카드 남발로 양산된 신용불량자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시작된 감사원의 신용카드 정책 특별감사는 이처럼 어리석은 일을 다시 벌이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어제 발표된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는 실망스럽다. 감사원은 신용카드 대란이 금융감독 체계의 문제점과 감독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가 카드 규제를 쉽게 풀어주고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조사는 미흡했다. 예를 들어 금융감독 당국은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를 규제하고 시정조치를 도입하려 했다가 이를 유예하거나 폐지한 바 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감독 당국이 보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거나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어물어물 넘어갔다. 당시 제기된 감독 강화의 필요성이 어떤 이유로 묵살되었는지, 여기에 권력적 요소는 얼마나 개입됐는지, 기업과 감독당국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점검을 소홀히 했다. 이런 식의 감사로는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할 때 감독 당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의 당시 국장(현 부원장)에 대해 인사조치를 요구하면서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금감원에는 기관주의만 통보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카드 남발을 유발한 정책담당자들은 지금도 버젓이 고위직을 누리고 있으면서 감독을 부실하게 한 담당 국장에게만 카드 대란의 책임을 묻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정책적 판단이라 하여 무조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법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공인의 도덕적 책임은 계속 남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시 당국자들의 역할과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당시 당국자들도 면피성 발언보다는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