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비아그라 맹신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정력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국민성 탓일까. 비아그라 열풍이 거세기만 하다.

이미 보따리장수를 통해 밀반입된 비아그라가 남대문.이태원 등지에서 현지보다 서너배 이상 비싼 한알에 수만원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김포세관도 미국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비아그라를 단속하기 위해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재미교포 의사들은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는 친지들의 청탁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지 약국의 불법유통 사례마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과열 분위기에 대한 우려와는 별도로 비아그라가 의학적으로 대단한 약임엔 분명하다.

가장 복용하기 편한 먹는 알약의 형태이면서 주사제나 보형물과 달리 원할 때만 선택적으로 발기를 지속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비아그라의 등장은 해피메이커라 불리는 항우울제 프로작과 더불어 약물이 질병의 치료뿐 아니라 인간의 행복마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아그라에도 몇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우선 법률상의 문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내 임상시험이 끝나는 99년 하반기 무렵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복용가능하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비아그라에 대한 과잉기대도 문제다.

비아그라를 발기부전치료제가 아닌 정력증강제로 오해하거나 조루치료제로 착각해선 안된다.

이 점에 있어선 제조회사인 화이자마저 건강한 사람이 단순히 정력을 증강시키거나 조루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아그라가 가뜩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력 콤플렉스를 자극해 '왕성한 발기력 = 성공적 섹스' 란 왜곡된 성지식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이란 본질에 충실하기보다 알약 하나로 손쉽게 쾌락을 얻으려는 비아그라 열풍은 자칫 과학맹신주의가 빚어낸 또하나의 부산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