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4. 고무줄 같은 마라톤 기준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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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엔 아무나 출전하는 게 아니다. 국제연맹과 국제올림픽조직위(IOC)가 정한 '기준기록'을 넘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대회가 거듭되면서 출전자가 늘어나자 일정 수준이 못 되는 선수는 참가할 수 없게 한 제도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 처음 도입됐다.

기준기록은 하나인 경우가 많지만 육상과 수영은 A.B 두 가지다. 육상은 나라별로 A기록 통과자 3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그보다 수준이 좀 낮은 B를 통과한 선수들 중에선 한명만 출전이 허용된다. 수영은 A기록 통과자 2명까지, B기록 통과자는 역시 한명만 참가할 수 있다. 이때의 기록은 국제연맹 또는 국가연맹이 개최하거나 승인한 공식대회에서 낸 것이라야 한다.

경기 수준이 향상되면서 기준기록도 조금씩 세졌다. 하지만 일부 종목은 참가 유도를 위해 하향조정도 한다.

남자 100m의 첫 기준기록(60년 로마)은 10초4였다. 이번 아테네에서는 A기록이 10초21, B는 10초28. 44년 만에 최고 0.19초가 당겨졌다. 애석하게도 국내에는 현재 이 기록을 통과한 선수가 없다. 최고기록이 강태석(29.안양시청)선수의 10초43. 그래서 올림픽 100m 레인에는 아직 아무도 서지 못한다. 한국신기록은 79년 9월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서말구가 세운 10초34다.

*** 100m 기준 통과 국내 전무

마라톤은 92년(바르셀로나)에 처음 기준기록이 도입됐다. 2시간14분30초였다. 다음 대회(96년 애틀랜타)에서는 A와 B로 나뉘었다. 참가 문호를 넓힌 것이다. A기록도 2시간16분으로 완화했다. 그랬다가 2000년(시드니)에는 2시간14분으로 다시 내렸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시간15분이다.

그때그때 선수 규모와 수준에 맞춰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시드니 때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에 아프리카 기니의 에릭 무삼바니(26)가 특별초청됐다. 그의 기록은 1분52초72. 기준기록 B(52초59)에도 한참 모자랐다. '참가에 의의'라는 올림픽 정신에 따라 수영 불모지를 배려한 IOC의 결정이었다.

당시 수영 입문 8개월인 무삼바니는 거의 익사 위기까지 가는 눈물겨운 역영을 했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골인한 뒤에도 한참 동안 혼자서 헤엄쳤다.

기록을 위해 최신형 전신(全身) 수영복을 입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트렁크 같은 사각팬티를 입고 나와 시작부터 눈길을 끈 그였다. 경기를 끝내고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당신들은 금메달을 위해 헤엄쳤는가. 나는 익사하지 않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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