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68년 5월사태'재평가 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68년 5월3일 오후4시50분 파리 소르본대학. 최루탄 발사기와 곤봉으로 무장한 수백명의 경찰병력이 교내로 진입했다. 공권력의 소르본대 투입은 1257년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학내에서 정치토론을 벌이던 5백93명의 학생이 현장에서 검거됐다.

그날 밤 이 대학 근처 생 미셸가 (街)에는 1871년 파리코뮨 이후 처음으로 바리케이드가 등장했고 보도블록은 투석으로 변해 매캐한 최루탄 연기속에서 밤새 공중을 날았다. 그해 5월 프랑스를 전후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몰고갔던 68년 5월사태는 그렇게 막이 올랐다.

파리 근교 낭테르대 학생들이 같은해 4월 여학생 기숙사 출입 허용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난 데서 발단이 된 학생시위는 곧 기성질서와 권위를 전면 거부하는 '베이비 붐 세대의 전전 (戰前) 세대에 대한 봉기' 로 변해 5월 내내 프랑스 전국을 뒤흔들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자 제3세계 학생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68년 5월사태 3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재평가하는 열기가 프랑스내에 뜨겁다. 언론에 특집이 줄을 잇고 관련 서적 출간도 러시다. 학계와 정계에서 세미나와 토론회가 끊이지 않는 등 프랑스 사회 전체가 당시의 '열병' 을 다시 앓고 있는 느낌이다.

당시 유행했던 '금지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는 구호가 함축하듯 68년 세대는 보수.부르좌적 질서가 지배하는 모든 사회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다. 성 (性) 의 해방은 뚜렷한 성과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 혁명이었다는 것이 '68세대' 의 솔직한 고백이다. 프랑스의 교양채널 '라 셍키엠' 의 제롬 클레망 사장은 "폭력혁명은 해결책이 아니며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기성질서 속에 들어가 투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고 말한다.

당시 파리 대학가인 '카르티에 라탱' 에서 돌로 최루탄에 맞섰던 클레망은 사태 후 프랑스 최고 엘리트 관료 코스인 국립행정대학 (ENA)에 들어갔다.

현 프랑스 젊은 세대의 75%는 5월사태가 부모들의 교육방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당시 부모 세대, 즉 68세대가 추구했던 혁명이나 계급투쟁 등의 개념에도 부정적이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가 18~30세 사이의 프랑스 젊은이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2%가 이상 (理想) 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47%가 최고의 이상으로 직업적 성공을 꼽은 반면 18%만이 정의.평등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실현을 이상으로 여겼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알랭 투렌은 "68세대에게 사회는 거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동화 (同化) 의 대상" 이라고 지적한다.

독일계 대학생으로 5월 사태 주역 가운데 한나인 다니엘 콘 벤디트 (53.독일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은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경영권을 달라고 했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미래 자체가 없다" 고 한탄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 속에 살고 있는 98년 세대는 68세대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혁명을 꿈꿀 수 있었던 자신들은 행복한 세대였다는 것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bmbmb@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