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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바둑대회는 축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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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양의 바둑대회는 축제처럼 열린다. 유럽대회나 호주대회는 거의 일주일씩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2, 3주씩 휴가를 내 오래전부터 이 대회에 대비한다.

먼 곳에서 가족이나 바둑클럽의 동료들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바닷가 휴양지나 대학의 기숙사등에 차려진 대회장으로 모여든다. 아무리 하수의 대회라도 공정성의 상징인 계시기는 필수품이다.

그들이 바둑을 즐기는 방식은 이처럼 정성스럽다. 토요일 오후에 시작하여 일요일 새벽2, 3시까지 하루에 5, 6판씩 강행군하는 우리의 아마추어 대회가 우승자선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바둑을 '동양의 머나먼 도 (道)' 로 인식하는 서양인들은 품위와 공정성을 중시한다.

서양바둑보급을 위해 한국기원이 지원하는 최초의 대회가 지금 러시아 대륙에서 열리고 있다. 대회명칭은 '98LG그랑프리 CIS바둑대회. 서양지역에서 일본의 '고 (GO.碁)' 대신 'BADUK' 이란 명칭이 쓰인 대회는 이 대회가 사상 처음이다.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열리고 있는 이 대회를 참관하고 돌아온 한국기원의 프로기사 천풍조7단은 러시아지역의 바둑열기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러시아바둑협회는 현수막 포스터 기념품을 제작하여 붐을 조성했고 TV, 신문사등은 신기한듯 취재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 전지역을 돌며 5차례 대결한 뒤 7월 모스크바에서 최종 본선이 열리게 되는데 이대회 최강부우승자는 올해 LG배세계기왕전에 CIS 대표로 참가하는 특전이 주어진다.

제한시간은 각 80분, 덤은 6집반. 2월에 열린 모스크바의 1차 지역예선에는 총 114명이 참가했다.

이중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날아온 드미트리 보카스키 (18) 6단이 우승했다.

유럽의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후지쓰배와 동양증권배에도 참가했던 러시아의 최고수 알렉세이 라자레프7단은 10위로 밀려버렸다.

드미트리6단은 알고보니 일본기원에서 1년간 바둑연수를 했던 실력파. 3월의 2차지역예선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선 라자레프7단이 우승, 명예를 회복했다.

3차 지역예선은 지난 10 -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렸다. 참가인원은 84명. 우승자는 6전전승을 거둔 안드레이 흐메로프6단이 차지했고 라자레프는 2위로 밀렸다.

우승자는 매번 바뀌고있는데 千7단은 "한국에 바둑유학중인 디네스타인과 식시나, 일본에 유학중인 안톤등 10대강자들이 가세하면 판도는 또 바뀔 것" 이라고 한다.

5월에는 카잔, 6월에는 극동의 하바로프스키에서 마지막 예선이 열린다. 우승상금은 불과 3천달러밖에 안되지만 이들은 며칠씩 기차를 타고서라도 멀고먼 하바로프스키까지 찾아갈지 모른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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