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미진의 문화보기]레오나르도를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왜 지금 '레오나르도' 인가? 요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영화배우 디카프리오보다 '레오나르도' 라는 이름으로 역사상 훨씬 더 유명한 남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5백년쯤 전 이탈리아에서 출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디카프리오가 록음악과 함께 질주하는 20세기 말의 신세대 로미오라면, 다 빈치는 희랍문명의 문예부흥을 꿈꾸던 당시 신세대 예술가로서 르네상스 최초의 대가였다.

다 빈치는 20세에 스승의 붓을 꺾게 할 만큼 뛰어난 화가였다. 그는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과 감각의 세계를 넘나드는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지식은 경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었던 다 빈치는 기계와 수학, 건축과 식물 같은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스케치로 남겼다.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는 헬리콥터 비슷한 상상의 물체를 고안해 냈다. 그가 죽은 뒤 4백년이나 지난 후 가볍고 강력한 모터의 발명으로 그 소망은 실현되었다.

다 빈치가 살던 당시, 신에 의해 닫혔던 자연으로 되돌아가던 과정은 신의 검열에서 인간의 검열로 옮아가는 휴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긴 역사의 출발을 예고했다. 인간의 강렬한 개성은 그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신의 자리를 대신한 물질과 정신이라는 상반된 세계를 결속하는 문제는 한평생 다 빈치의 고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화가의 재능을 썩이며 자연과학에만 매달린다고 비난했다. 그는 해부실에 틀어박혀 심장과 태아에 대한 관찰을 통해 한낱 영혼의 그릇일 수밖에 없는 육체의 생명원리를 추적했다.

결국 다 빈치는 정신과 물질 세계를 초월하는 근원적인 미를 추구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두 세계의 갈등은 여전히 미래의 숙제로 남겨졌다.

15세기 이후 정신과 물질의 반목은 평행선처럼 달려왔다. 신대륙 발견과 자본주의의 은밀한 태동을 거치면서, 과학과 예술은 좀더 확고한 전문영역으로 분리되었고 이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오늘날 기술은 소실점이 없는 무한대로 확산되고 있지만, 예술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퇴행하는 원시적.소아적 상징 속에서 자기 궤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의 철학자들은 언어를 분석하는 일 외에는 더 이상 사유하기를 거부하며, 20세기 휴머니즘의 극단에서 인간이 획득한 것은 철저하게 고독한 카오스의 세계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현재 진행중인 멀티미디어를 축으로 한 하이퍼미디어 사회는 다시금 과학기술과 경제 및 문화의 결합을 유도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 기술공학과 우수한 산업자본을 바탕으로 한 노도의 물결이 벌써부터 후진국의 저지대를 강타하고 있다. 그 위력은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 에서 '서구와 그외 문명' 으로 구별할 만큼 지구 전체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미래는 기계와의 협동을 거절하지 않는 방향에서 인간에게 더욱 큰 자주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본위 정신과 기술의 균형잡힌 통합을 꿈꾸는 실사구시 (實事求是) 의 사고로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텃밭으로 일궈온 분야다.

5백년 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꿈꾸던 정신과 물질의 합일은 가능한 것일까. 그 바람은 동양적 가치 속에서 유효한 빛으로 살아있다.

김미진 〈소설가·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