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형 포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7호 33면

20세기 미국 자동차 산업의 판을 바꾼 이는 헨리 포드(1863~1947)였다. 1908년 T형 포드를 선보였고, 1914년엔 대량생산에 맞는 조립 라인을 도입해 산업사에 큰 획을 그었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그는 미국 근로자들의 소득과 소비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근로자의 임금을 확 올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14년 2달러30센트이던 최저 일당을 단번에 5달러로 높였다.

근로자들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디트로이트에는 이민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들이 공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툭하면 결근하거나 사보타주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기술을 가르쳐 부려먹을 만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리는 철새형 근로자들도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급진 노동단체인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이 포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포드는 이를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월급을 왕창 올려줌으로써 회사에 충성하는 근로자, 노동운동에 빠지지 않는 근로자를 쓰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무조건 일당 5달러를 보장한 건 아니었다. 절반은 임금으로, 절반은 이익배당으로 줬다. 배당은 제때 출근해 열심히 일하는지, 퇴근 후 술 안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지, 노조 근처를 기웃거리진 않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나서야 줬다. 그 과정에 스파이 비슷한 조직을 활용하는 바람에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돈이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포드에서 일하려는 근로자가 줄을 섰다고 하니 말이다.

포드에서 일한다는 것은 곧 중산층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월급을 모아 자기가 만든 T형 포드를 샀다. T형 포드의 값은 1909년 22개월치 평균 임금과 맞먹었으나, 25년엔 불과 3개월치가 됐다. 대량생산으로 값이 떨어진 동시에 임금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T형 포드를 비롯한 자동차가 중산층의 구매력 범위 내에 들어오자 소비의식이 바뀌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은 번 것 이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살뜰 모으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다 새로운 내구성 소비재들이 속속 등장하고, 할부제도가 생겨 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신용판매 전문 금융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소비를 부추긴 것이다. 자동차 할부금융사의 경우 1920년 미국 전역에 100개쯤이었으나, 28년엔 1000개로 늘었다.

이쯤 되자 버는 만큼만 쓰겠다던 19세기적 소비의식이 흔들렸다. 일단 사고 보자, 나중에 벌어 갚으면 된다, 할부로 사면 부담도 작다…. 당장 돈이 모자라도 값비싼 자동차를 턱턱 살 수 있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절약과 저축은 소비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1920년대 후반엔 빚을 내 소비한다는 데 대한 청교도적 죄의식이 종적을 감췄다. 결국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소득과 소비 수준을 동시에 끌어올렸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 산업이 휘청거리면서 디트로이트의 소득과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고 한다. 한 세기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임팩트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