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형장으로 가던 동료들 눈에 선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유신정권 시절 사형수였다. 1974년 긴급조치위반(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그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4년5개월을 복역하다가 특사로 풀려났다. 하지만 민청학련 배후 조종 혐의로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인혁당 재건위의 8명에겐 선고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됐다. 의문사진상위는 최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유 의원은 서울구치소에서 형장으로 가는 동료를 봤다. "선고 다음날인 75년 4월 9일 새벽 누군가가 '넥타이 공장을 가동한다'고 속삭여 눈을 떴다. 그 말은 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한다'는 뜻으로 통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그럴 수가 있느냐. 믿을 수 없는 일이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의 현실은 비정했다."

유 의원은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형장으로 가던 그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사형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그처럼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다시는 그런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유 의원은 당장 다음주부터 사형 폐지 운동가들과 법률가들을 만나 입법안 마련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는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는 유럽 등을 중심으로 76개국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또 10년간 한건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국가도 20여개국이나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이 되려면 이렇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형제를 없앨 자신이 있다고 했다. "시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유 의원은 "지난 16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사형폐지법안에 여야 의원 155명이 서명했다"며 "이번엔 그보다 더 많은 의원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