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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어려울 때일수록 식량자급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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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는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만일 이 상황에서 주곡인 쌀마저 부족해 수입해야 할 형편이었다면 국민생활에 엄청난 혼란이 초래됐을 것이다.국제통화기금 (IMF) 경제난 속에서 먹는 문제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귀중한 외화를 아낄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이제 우리도 안보차원에서 식량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우리의 농촌은 어떠한가.현재 농촌은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힘들 정도로 노령화됐고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농촌 노동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농업의 기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지정리사업의 지속적인 시행이다.

현재 우리의 곡물자급률은 27% 정도에 불과하고 쌀의 경우만 90% 이상 자급되고 있다.이같은 자급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 1백만㏊의 정비된 논이 계속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좁은 땅덩어리에 주택지.공장부지 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농지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농지에 농사짓는 것보다 공장을 지어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 거나 '공산품을 수출해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 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있게 전파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공산품을 생산하는 것이 수익이 높다지만 과거의 오일쇼크와 같이 몇몇 식량수출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할 경우 농업과 공업을 비교우위로 따질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된다.예전처럼 먹을 것을 걱정하던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경지정리사업을 적극 추진, 영농 기계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엄청난 생산비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일부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농지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것은 낭비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을 이나마도 존속시키고 쌀의 자급을 달성한 것은 경지정리사업의 지속적인 추진 덕분이다.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많은 농지가 황폐화하고 휴경지가 돼 쌀자급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공산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짓고 최신 기계를 설치한다.농업에서의 공장은 농지고 수로와 농로는 기계설비와 마찬가지다.그러므로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동화.무인화 등 최신 설비를 갖추는 것처럼 농지도 영농기계와 영농형태에 맞도록 정비해야 하고 수로와 농로도 현대화해야 한다.

공장의 기계가 낡고 시대에 뒤떨어지면 교체해야 하듯 일단 정비된 농지도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시대의 영농기계와 영농형태에 맞는 수준으로 새로 정비해야 한다.농지에 대한 투자가 소홀하면 농지는 잠식되고 전용이 급속히 진행돼 농업은 회복불능의 상태가 된다.식량의 자급률을 최대한 높이고 후손에게 잘 정비된 농지를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농지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정비해야 한다.

유혁우 〈한국농공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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