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환란의 주범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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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환위기의 주범이 누구인가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다.이것은 역사상 처음 시도하는 실험이다.그보다 앞서 환란 (換亂) 의 구조적.행태적 원인과 그의 진행과정에 어떤 작용과 반작용이 있었나를 보아야 할 것이다.

수출입 규모가 국민총생산의 3분의2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외화 유동성은 바로 우리 경제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를 몰고 온 환란은 바로 대외신인도의 추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는 외국인이 우리 기업이나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경우 그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는 정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단기적 상환능력과 관련해 외환보유고와 외채규모로, 또 장기적으로는 국제수지 개선 가능성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제수지 개선 가능성은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노력이 얼마나 진지한가, 내.외국인 모두에게 기업하기 좋은 시장경제 여건이 마련되고 있는가, 모든 경제 관행과 규칙이 공정하고 투명해 누구나 한국에 투자하기에 거리낌이 없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가 환란을 맞게 된 경위와 상황을 이러한 잣대로 짚어보자. 첫째, 우리는 94년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96년 무려 2백3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이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정함으로써 대외신인도에 금이 가게 했다.그 이유는 93년 김영삼 (金泳三) 정부 집권초 경기부양책을 써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극복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둘째, 96년 후반부터 일본의 엔화가 반으로 절하돼 그 결과 산업구조상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의 수출은 경쟁력을 잃고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 불어났고 급기야 외채도 1천5백억달러 수준까지 누적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화가치 방어에만 집착하다 보니 환율 현실화 등 가격경쟁력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외환보유고의 감소만 초래했다.

셋째, 경제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장치가 바로 시장경제체제라 할 수 있다.그러나 한국이 경제를 운영하는 스타일은 시장경제에 반 (反) 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 첫 사건이 노동법 파동이다.이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못했고 대외적으로 한국은 시장경제를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 의지와 제도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역량에 대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한보사태와 그와 연관된 대통령 아들의 구속으로 외국인들은 한국의 정경유착이 상당히 보편화된 것으로 의심하게 됐다.한국 대기업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고 한국기업에 대한 신인도 하락은 금융기관 내지 한국경제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국내에서는 바로 외국인의 주식시장 자금이탈로 이어졌다.

그 후로도 대기업의 부도가 점철되는 과정에 특히 우리를 불행하게 했던 것은 기아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표출된 경제주체들과 정치권의 반 (反) 시장주의적 자세라 할 수 있다.언론은 기아가 국민기업이니 정부가 살려야 한다고 했고, 노조와 장단을 맞춘 경영진은 부실 경영의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 해결을 정부에 떠넘기려 했다.

채권단은 정부 눈치만 보고,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원칙 없는 정치논리만 내세웠다.부도기업과 부실은행에 대한 정부의 카드는 반 (反) 시장적인 공기업화 방안이었다.

우리의 대외신인도를 더욱 떨어뜨린 또 하나의 사건은 97년 가을 국회에서 금융개혁법안의 유실이다.인기와 표밭만을 헤매는 정치권의 무책임성, 그리고 정치권을 설득하고 국정을 주도할 리더십의 공백 속에서 국정은 표류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에 이어 홍콩증시가 무너지는 판에 과연 어느 외국금융기관이 '원칙없는' 경제와 '무책임한' 정치를 믿고 우리에게 돈을 더 빌려주겠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일련의 정책실패와 국내외 시장실패의 복합적 누적과정에서 환란의 주범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사법적 절차 이전에 청문회부터 열어야 한다.

황인정 〈前 KD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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