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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26. 술 마시기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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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한국 농구선수들과 축구선수들 간에 있었던 '술 마시기 대회'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농구팀은 우승한 날 밤 장덕진 선수단장에게 인사를 갔다. 축구협회장을 겸하고 있던 장 단장은 "수고했다"며 선수들에게 금일봉을 줬다. 그런데 봉투엔 고작 300달러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축구팀이 버마와 비겨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는 "족구(足球)는 반쪽 우승"이라고 놀려댔으나 정작 포상금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1인당 100달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분이 찜찜했다.

농구팀은 폐막식을 마치고 호텔 앞 일본식당에서 조촐한 회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 축구선수들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나는 한홍기 축구감독, 최은택 코치와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식당을 나서면서 선수들에게 적당히 마시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새벽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한국전쟁 때 축구화와 영어사전만 갖고 월남한 일화로 유명한 축구인이었다.

그런데 출국하는 날 아침 큰 소동이 일어났다. 농구선수들은 멀쩡하게 짐을 꾸려 모두 공항버스에 올랐으나, 몇 명의 축구선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숙소에서 자고 있었고, 어떤 선수는 화장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힘들게 그들을 공항으로 옮겼으나 그 곳에서도 인사불성이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전날 일본식당에서 농구선수들과 축구선수들이 밤새도록 술 대결을 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포상금이 적어 심사가 뒤틀린 농구선수들이 술 대결을 제의했고, 축구선수들이 이에 응한 것이다. 두팀은 일곱명씩 '술선수'를 뽑았다. 농구팀에선 김영일.이인표.신동파.유희형.김인건.박한.최종규가 나섰다. 축구팀에선 오인복.김홍일.이회택.박이천.정규풍.최재모.김호가 나왔다. 서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맥주를 상자째 갖다놓았다. 잔은 하나뿐이었다. 1대 1 대결을 벌였다. 한명이 탈락하면 옆 사람이 대신 잔을 받아야 했다.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시합은 계속됐다. 쉴새없이 술잔이 오갔다. 순식간에 술병이 쌓였다.

두시간쯤 지나 자정을 넘어서자 축구팀에서 탈락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술잔을 받아 마시자마자 토하거나 화장실 변기 앞에 쓰러져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도 생겼다. 급기야 최재모 혼자 일곱명의 술잔을 받아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도 끝내 무릎을 꿇었다. 농구팀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남은 술병을 깨끗이 비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사실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 화제가 됐고, 농구선수들의 술 실력은 한국 스포츠 야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운동선수들은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지만 농구선수들의 음주는 유별났다. 키가 큰 만큼 장도 길어서 그럴까?

이듬해 도쿄 아시아농구선수권(ABC)대회를 앞두고 나는 심각한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김영일에게 넘기고 나는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도쿄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의 텃세와 필리핀의 파워에 밀려 아시아 왕좌를 내주고 3위로 주저앉았다. 73년 마닐라 ABC대회를 앞두고 나는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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