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과거를, 미리 말했다면 정말 용서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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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06면

나이키 이스케이프의 끈을 아무리 야무지게 동여맨들 옥죄는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냉담한 부모, 거듭되는 학교폭력에 시달린 끝에 14세 때 충동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 보이A, 즉 소년A(앤드루 가필드)의 운명도 그랬다. 10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잭’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사회에 복귀한 소년. 그에게 과거는 발목에 매달린 돌덩이였다. 소년은 직장을 얻고 애인도 사귄다. 보호감찰사 테리(피터 뮬란)의 따뜻한 도움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늘 그의 머릿속 시계는 열 살 때에 멈춰져 있다.

영화 ‘보이A’, 감독 존 크롤리, 주연 앤드루 가필드,피터 뮬란,케이티 라이온스

어느 날 교통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한 잭은 영웅이 된다. 하지만 10년간 ‘보이A’의 석방을 기다리던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그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한 타블로이드 기사의 제목이 ‘악마, 성인이 되다’일 정도로 세상의 시선은 다분히 악의적이었다. 여자친구의 연락은 갑작스레 끊기고 동료는 불같이 화를 낸다. 친아들보다 잭을 더 챙기던 테리도 속수무책이다. 소년에겐 어떤 선택이 남아 있을까. 그의 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교도소 수감이란 처벌과 속죄·갱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적 프로세스가 아니라, 단지 죄지은 사람을 사회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시킨 뒤 남은 일생을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는 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

‘보이A’는 1993년 영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임스 벌저 실종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리버풀의 한 쇼핑센터에서 실종된 두 살배기 제임스 벌저가 10세 소년들에 의해 납치돼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었다. 당시 우세했던 주장은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이런 ‘싹수 노란 아이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책으로 쓴 작가 조너선 트리겔과 존 크롤리 감독의 시선은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아니다의 논쟁이 아니라, 사회가 부과한 형벌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이 어떤 현실에 부딪치는가였다.

첫 데이트가 끝나고 잭은 흐느낀다. 충동으로 얼룩진 과거가 너무나 한스럽고, 그리하여 여자 친구에게 비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이 속상하다. 여자친구는 모든 것이 드러난 뒤 겨우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말했다면 널 용서했을 거야. 지금은 안 돼.”

글쎄, 미리 말했다면 정말 용서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간단했다면 소년은 왜 그리 망설였을까. 소년범의 현실 말고도 이 영화는 인간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고 취약한 존재인가를 통렬하게 지적한다. 이야기 자체가 파워풀한 건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힘 있는 영화다. 보이A 역의 앤드루 가필드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영국아카데미상(BAFTA)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21일 단독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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