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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경매제 급부상…불황 타개위한 유통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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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술시장의 극심한 불황이 경매제를 빠른 속도로 정착시키고 있다.지난 수년동안 미술계 안팎에서 현대미술품 경매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왔으나 여러 제도적 문제와 작가들의 반발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혀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화랑가에서 작품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위기 상황을 맞아 경매제가 새로운 유통 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이 포문을 연 곳은 미술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동숭갤러리. 지난 2월 '유명조각작품 파격경매전' 을 열어 1백50여 점의 출품작 대부분을 낙찰시키며 7억8천여만원의 판매액을 기록하는 큰 성공을 거둔데 이어 3월 회화 경매전에서도 출품작 2백42점 가운데 63%를 낙찰 (판매액 5억5천여만원) 시켰다.이에 그치지 않고 경매를 상설화할 계획을 내비치자 화랑협회 (회장 권상릉) 는 "미술품 떨이 판매로 미술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경매를 자제해 줄 것" 을 동숭갤러리에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협회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화랑들은 내심 경매제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비싼 창고대여료를 물면서 작품이 묶여있는 것보다는 낮은 가격에라도 팔아 현찰화해야 불황을 견딜 수 있다는 계산이다.

8일과 15일로 잡혀있는 동숭갤러리의 3.4차 경매에 19개 화랑 (회원 18개) 이 참여하고 있는데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동숭갤러리 이행로 대표는 "경매제 외에 별다른 활로가 없는 화랑들뿐 아니라 개인.기업 소장가들로부터도 경매에 관한 문의가 많다" 며 "5월 중에 개인 소장자 출품작만으로 또 한번의 경매를 마련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동숭갤러리의 경매성공은 불합리한 호당가격제를 없애 침체한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기반이 약한 미술시장이 경매로만 치우칠 경우 시장 자체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선화랑 김창실 사장이 "개별적 작품의 질을 떠나 낙찰가만 부각되는 경매제는 작품가격을 떨어뜨려 결국 작가와 화랑 모두를 망하게 한다" 고 비난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또 구작이나 작고작가 작품뿐 아니라 전시 중인 작가들의 신작까지 곧바로 경매에 붙여질 경우 화랑 판매라는 1차 미술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2.3월 경매에서 화랑관계자 등 미술품 딜러가 아닌 지방의 실수요자들이 주로 참가해 이런 의견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갤러리현대 박명자 사장은 "경매제 도입은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화랑판매와 경매는 엄연히 다른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이런 여러 논란에도 7일부터 시작되는 서울판화미술제와 5월 봉산미술제에서도 경매를 시행할 방침이어서 경매제는 올해 미술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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