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구차, 서울광장서 서울역 1㎞ 가는 데 1시간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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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종이비행기로 덮인 운구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치러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노란색 물결로 가득 찼다. 노란색 햇빛가리개 모자를 쓰고 노란 풍선을 든 추모객들이 서울광장을 채웠다. 노란 스카프를 목이나 팔에 감기도 했다. 청계광장과 도로 주변 가로수에는 노란 풍선 띠가 걸렸다.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오전 8시부터였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버스가 철수한 시각이었다. 인파는 오전 10시에 이미 서울광장을 채웠다.

광장 주변엔 2000여 개의 오색 만장이 나부꼈다. ‘생사일여(生死一如·삶과 죽음이 하나다)’ ‘무거운 짐 벗어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슬픈 대한민국’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간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들이다. 많은 시민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내 마음 속 대통령입니다’ 등이 적힌 노란색 카드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낮 12시가 되면서 인근 건물들에서 ‘넥타이 부대’가 쏟아져 나왔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전광판에 나오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회사원 정모(40)씨는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보러 왔다”고 말했다.

오후 1시,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사전 행사가 시작됐다. 이 무렵엔 시청 광장뿐 아니라 세종로와 시청역 앞 도로에까지 많은 추모객이 모여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지만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제단과 대형 전광판을 주시했다.

가수 안치환·양희은·윤도현이 차례로 나와 추모 노래를 불렀다. 양희은이 하늘을 바라보며 고인의 생전 애창곡이었던 ‘상록수’를 불렀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시민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1시20분, 노란 물결이 출렁였다. 운구 행렬이 광장에 들어서자 앉아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선 것이었다. 운구차를 따라 권양숙 여사 등 유족이 광장에 들어섰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제단 앞쪽의 시민들은 “죄송합니다”라며 오열했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형 크레인 위에서 흰 천을 펄럭이며 노제 개막을 알렸다. 북이 세 번 울렸다. 태평소의 날카로운 울음이 광장을 갈랐다. 흰 삼베옷을 입은 국립창극단이 ‘혼맞이 소리’를 부른 다음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향불을 피우고 ‘진혼무’ 공연을 했다.

안숙선 명창의 조창 뒤엔 조시 낭독이 이어졌다. 안도현 시인은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중략…/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라고 읊었다. 김진경 시인은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당신/물러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당신”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되새겼다. 도종환 시인은 “그분의 조각난 육신으로 인해 전국이 하나가 되고 진정으로 뉘우치고 화합하길 바란다”고 말한 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쪽방촌 출신의 사회복지사 겸 시인 장시아(24)씨가 시민 대표로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었다. 장씨는 쪽방촌 삶을 써 내려간 책 『까치집 사람들』에 노 전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며 노무현 정부 서민 정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부분을 읽으며 감정에 북받쳐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노제는 오후 2시10분쯤 마무리됐다.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가 흘러나오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등 유족과 추모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고인의 육성 녹음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노제가 끝난 뒤에도 추모 인파는 운구차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으로 출발한 운구차는 더디게 움직였다. 추모객들에게 둘러싸여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운구차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가지 마세요”라는 울음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검은 운구차의 지붕 위로 노란색 종이비행기 수백 개가 날아와 앉았다. 추모객들이 글을 적은 뒤 접은 종이비행기였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서 1㎞ 남짓한 서울역까지 가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만장과 추모 인파는 서울역 광장을 지나 남영동까지 운구 행렬을 따라 갔다. 오후 5시가 넘도록 운구 행렬이 나아가질 못하자 노건호씨가 운구 차량에서 혼자 내렸다. 그는 차 앞으로 걸어가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은 박수를 쳤고, 이윽고 길을 조금씩 터줬다. 운구차가 화장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은 오후 5시20분. 예상 일정보다 세 시간이나 지체된 시각이었다.

임미진·이정봉·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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