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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중·러와도 등진 채 외길 행보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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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꽃게잡이를 하던 중국 어선들이 조업을 중단한 채 북한 황해남도 석도 주변에 정박해 있다. 북한은 이날 오후 함북 무수단기지에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 한 발을 동해상을 향해 발사했다. [연평도=연합뉴스]

핵실험 이후 남한·미국을 겨냥해 강경 위협을 계속해 왔던 북한이 29일 중국·러시아와도 대결 구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러시아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며 ‘후방 지원’을 해 왔었다. 북한 역시 두 나라에 대해 심기 노출을 피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 징후’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향후 북한이 대남·대미 관계는 물론 대외 관계 전반을 무시한 채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고 ‘대결 행보 외통수’로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북한 외무성이 이날 발표한 담화는 중국·러시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두 나라를 포함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위선자’로 표현했다. 담화는 “전체 핵실험의 99.9%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진행했다”며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는) 위선자들이 만들어낸 결의”라고 비난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이며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핵 보유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중국과 안보리 의장국인 러시아는 지난달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안보리의 의장성명 채택에 동참했었고, 이번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결사 반대”(중국), “동북아의 안보와 안정을 위협한다”(러시아)고 비난했었다.

북한 외무성 담화는 이에 대해 “이런 나라들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키 리졸브’ 훈련 등이 조선 반도에서 강행되고 있을 때는 침묵하다 우리의 부득이한 자위적 조치에는 위협이라고 떠들었다”며 “(이는) 저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핵무기)을 우리도 가지는 것이 싫다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지난달 14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의장성명을 내자 “안보리는 사죄해야 한다”고 했던 것에서 비난 수위를 더욱 높인 것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를 놓고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내부 요인론’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보여주는 강경한 태도는 내부 요인이 아니면 설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대미 협상용으로 했다면 중국·러시아와 공개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만약 후계자에게 핵 보유국 위상을 만들어주기 위한 ‘후계용·핵 보유용 의도’였다면 전통 우방국인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 요인에서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고유환(북한학과) 동국대 교수는 “이번 외무성 담화는 핵실험 후 북한과 중국·러시아가 불편해졌음을 보여준다”며 “북한이 중국·러시아에 공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북한은 이날 유엔 안보리가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을 전후해 ‘준전시상태 선포’ 등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27일에 이어 이날도 ‘정전협정 무효화’를 주장했다.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는 정전협정 파기나 다름없고 무효화되면 전쟁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는 협박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영변의 재처리시설·원자로 등의 재가동을 가속화하고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 발사를 시도하거나, 추가 핵실험 준비에까지 나설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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