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산가족 상봉 빗장 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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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당국이 11일 북경에서 남북한 차관급 접촉을 갖자고 제의해온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남북당국간에 협의될 것인지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정부가 최우선 대북정책 과제로 이산가족상봉을 제시하면서 실향민들의 기대가 한껏 부풀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의 대화제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북측은 이미 지난 달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5차 대표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앞으로 협의해 볼 수 있다" 는 입장을 취해 일단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점진적으로 이산가족교류를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에 밝은 한 귀순자는 "북한이 이미 이산가족교류에 대비해 대상주민 선정작업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 내다봤다.

3월1일부터 사회안전부에 '주소안내소' 를 설치, 주민들의 이산가족찾기를 주선할 것이라고 밝힌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6.25직후와 70년대 초 남북대화시기에 주소안내소를 설치한 경험이 있다" 고 상기시켰다.

72년에는 본격적인 이산가족교류에 대비, 이남 방문자 및 남에서 올 가족상봉 대상자를 선정해 2.3개월간 개별적.집체적 교육을 시켰다는 설명이다.

북측은 그간 이산가족교류를 '정치적 사안' 으로 파악해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이런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여러 갈래에서 눈에 띈다.

미국 등지 해외동포들의 고국방문에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제3국 가족상봉을 허용하는 것도 한 예다. 이같은 태도변화는 '경제적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측이 월남 (越南) 기업인들의 북한 고향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의 군 (郡) 급단위의 식료품공장이나 생필품공장들은 원자재난.에너지난으로 가동률이 형편없다.

그래서 월남기업인들의 투자나 방문이 경제난에 다소 숨통을 터줄까해 기대를 한다는 전언이다.

다만 당장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정치적 불안요소를 감당하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새정부가 정경분리를 내걸고 있듯이 북한은 또다른 의미에서 '정경분리' 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북한은 이밖에 최근 2차례에 걸쳐 시행한 북송 (北送) 일본인처의 일본방문을 성공한 것으로 평가, 인적교류에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흐름이 이산가족교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소지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산가족교류를 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 체결 등 정치.군사적인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직 낙관은 이르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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